블로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와 붓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의심이 들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정말 너무나도 거짓과 허위와 조작 정보들이 판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여쭤보고 싶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창조과학자들의 주장과 근거들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반박하면서 사이비과학이라고 까지 말하더군요.. 저는 지금까지 창조과학 이야기만을 듣고 자라왔기에 이것이 정말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진화론자들 이야기를 조금씩 알아갈 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 다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요.) 주인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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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참 더 배워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느껴지는 요즘입니다..ㅎㅎ 앞으로 자주 들르면서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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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주인장님의 의견을 여쭙고자 글을 올립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질문노트> 1. 하나님은 왜 이 세상과 만물을 창조 하셨는가? 2. 사탄은 어떻게 타락했는가? 절대 선이신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이 악을 행할 수 있는가? 절대적으로 선한 것으로부터 악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자유 의지를 주셨다해도 어떤 식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사탄은 교만으로 인해 타락했다고 하는데, 이 교만은 도대체 어디서 올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피조물 내에 이런 악한 것들도 함께 창조하셨던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 속성 중에 악한 것도 내재되어있다는 말인가? 창세가 3장 22절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보아라,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뻗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이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말인가?? 3. 하나님의 첫 피조물인 사탄은 타락했고,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도 타락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락했다.) 근데 과연 사탄, 아담, 하와가 타락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뒤의 후손들이 타락하지 않았을까? 나는 당연히 타락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구약 전체에서도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을 통한 인류 구원계획을 세워놓으셨다. 이것이 내게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다. 어차피 타락할 것을 아셨는데 미리 계획을 짜 놓으셨다는 말씀이신가? 이 지구가 하나님의 연극무대고 인간들은 연극인형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4. 하나님은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을 미리 아시는 것인가? 하지만 구약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인간들이 심하게 타락한 것을 보고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하셨다. 개인의 기대와 예상에 미치지 못할 때 후회하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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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ply to this post by Samuel
질문 하나 하나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평생 연구하고도 결국 풀지 못하고 세상을 뜰 주제들이라, 무모하게 답하는 대신 짧게만 코멘트 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왜 이 세상과 만물을 창조 하셨는가? ---> 비록 성서에서 이런 저런 구절을 가져와서 나름 풀이해볼 수는 있겠지만 (가령, "나의 영광을 위해 지었나니..."), "Only God Knows". 아마 이게 제일 정답이 아닐까요? 기독교가 계시종교인 한, 정확히 계시되지 않은 초월자의 생각을 무리하게 추정하려는 것이 오히려 공허한 것이 아닐까요? 2. 사탄은 어떻게 타락했는가? 절대 선이신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이 악을 행할 수 있는가? 절대적으로 선한 것으로부터 악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자유 의지를 주셨다해도 어떤 식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사탄은 교만으로 인해 타락했다고 하는데, 이 교만은 도대체 어디서 올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피조물 내에 이런 악한 것들도 함께 창조하셨던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 속성 중에 악한 것도 내재되어있다는 말인가? 창세가 3장 22절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보아라,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뻗어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이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말인가?? ---> 긍정신학, 부정신학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긍정신학은 역사적으로 서방 기독교가 견지해 온 신관으로 일련의 속성들과 개념들로 신을 규정해서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신은 가장 위대하다, 가장 크시다, 가장 전능하다, 가장 선하다, 가장 사랑이 충만하다.....등등이 그 구체적 사례들입니다. 긍정신학의 결정적인 한계는 오직 신 만이 자신의 모든 속성을 기술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 아무리 수 많은 신의 속성을 나열한들 결국 신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딜레마입니다. 반면, 주로 동방 기독교의 부정을 통한 신 인식은 신의 속성을 인간에게 친숙한 어떤 개념과 틀 속에 가두지 않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긍정신학의 설명은 대체로 이분적 (가령, 선-악)이라서 신의 속성을 이해하려고 할때 속성들 간에 어떤 충돌이 발생하게 됩니다. 부정의 길을 통한 신 이해는 대체로 모호하지만, 신의 속성을 인간이 이해하는 방식에 가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가령, '신은 선하다'와 '신은 악하지 않다'를 비교해 보세요. 나아가 인간이 이해하는 선-악의 개념이 신에게도 적용되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2천 년 이상 논의되어 온 주제입니다. 가령, "절대선인 신은 악을 절대 행할 수 없다'란 명제는 이 한 문장 안에 많은 문제를 내포합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개념대로라면 이것은 '절대선'이란 개념이 '전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신이 "행하는 일"과 "일어나게 내버려 둔 일"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듯 합니다. 3. 하나님의 첫 피조물인 사탄은 타락했고,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도 타락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락했다.) 근데 과연 사탄, 아담, 하와가 타락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뒤의 후손들이 타락하지 않았을까? 나는 당연히 타락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구약 전체에서도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을 통한 인류 구원계획을 세워놓으셨다. 이것이 내게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다. 어차피 타락할 것을 아셨는데 미리 계획을 짜 놓으셨다는 말씀이신가? 이 지구가 하나님의 연극무대고 인간들은 연극인형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4. 하나님은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을 미리 아시는 것인가? 하지만 구약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인간들이 심하게 타락한 것을 보고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하셨다. 개인의 기대와 예상에 미치지 못할 때 후회하지 않는가? ---> 사실 플라톤주의자들은 한가지 해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물질세상의 조성자인 데미우르고스가 불완전한 질료로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세상이 완전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풀이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신이 피조물을 보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것이 꼭 이 세상이 '완전'했다라는 뜻은 아닐 것이며, 사실 초기 기독교 교부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즉, 타락하기 전의 피조세계는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그것이 꼭 신 처럼 '완전'했다라고 보지는 않았단 뜻입니다. 그럼 왜 신은 '완벽'한 세상을 만들지 않았는가? 전 잘 모르겠습니다. Only God Knows 가 역시 정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기독교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보다 다양한 관점들을 이해하기 위해, 예정과 자유의지를 조화하려고 시도한 라이프니쯔의 '예정조화론'에 대해 한번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요약한다면, 이 세상은 표면적으로 불합리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의 세계이며, 신의 예정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실제로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신은 예정했으되, "아담이 죄를 짓도록" 예정한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막은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행위에 대한 책임은 아담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신의 전지전능에 관련된 지난 2천 년간의 논쟁은 반드시 기독교의 '시간관'에 바탕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물리학에서처럼) 기독교 초기교부들은 모두 시간이 세상의 창조와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보았고, 따라서 인간은 이 세상 속에 짜여들어가 있는 시간을 통해서 신을 인지하고 신 자신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 밖에 혹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합니다. 예정론에 관한 현대의 대중적 설명들은 이 구도를 무시하고, 신과 인간을 동일한 시간축에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신의 예정과 신의 예지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합니다. 혹시 시간 나시면 시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제 11권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니 현대인들이 오히려 AD 1-4세기의 기독교 교부들 보다도 무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의 시간을 초월해 있는 존재가 한 차원 아래의 세상을 들여다 볼때 시간이 어떻게 보일지 전 상상하기 힘듭니다. (시간을 초월해 살아본 적 없으니 제 잘못은 아닙니다.) 아마도 3차원의 존재가 2차원 평면을 내려다보는 것 비슷하겠죠? 아마도 인간에겐 화살표처럼 한 방향으로만 날아가는 직선적인 시간이 그 존재에겐 한 점으로 보일지도 모르겠고, 이 세계에서의 시간적 인과관계는 신에겐 전혀 다르게 파악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끔 예정과 예지에 관한 해묵은 논쟁은 결국 시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결론은....잘 모릅니다. 그리고 신의 생각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이 괴로와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은 저 위에, 인간은 이 아래에 있으니까요. 최광민 p.s. 다음부터는 글을 정리해서 이 게시판이 아닌 블로그로 옮기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블로그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다름이 아니라 블로그 우측에 보면 블로그 후원이 있어 조금 했는데 무슨 물건이 배달되는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제 paypal 주소가 옛날 집 주소이고 제가 지금있는 집도 곧 옮길 거라서 최종적으로 이사를 하고 난 뒤에 보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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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메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재미삼아 페이팔 후원링크를 붙였는데 3년 만에 처음으로 "후원금"을 받게 되었네요. 그런데 죄송하게 배달상품은 없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원래 페이팔을 통해 '후원금 계좌'를 만들 경우 연간 후원액이 5만(천?)불을 넘게 되면 미국세무당국에 펀드레이징에 대한 정식허가를 받는 등 귀찮은 일이 생긴다길래, "지나치게 많은 후원금이 쏟아질까봐" 지레 겁을 먹고 후원금 계좌 대신 일반상품 계좌로 만들었습니다. 그럼 나중에 세금정산 때 받은 금액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되니까요. 제가 좀 낙천적입니다. 그랬는데.....앞서 말씀드린대로 사무엘님께서 3년 간 처음이자 유일한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상품은 없지만 원하시는 주제에 대해 능력껏 글을 포스팅하는 것으로 상품을 대체해 드리면 어떨까요? p.s. 참고로 후원금은 제가 수령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취소하실 수 있습니다. 최광민 |
ㅎㅎㅎㅎㅎ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초인님 블로그에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힘과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원본을 찾아가며 대조해가고 그 사람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주시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요. 저번에 여쭤본 질문에 대한 답들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앞으로 많이 들르고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후원금이라 하기에도 죄송하지만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riginal Message----- 안녕하세요! 이메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재미삼아 페이팔 후원링크를 붙였는데 3년 만에 처음으로 "후원금"을 받게 되었네요. 그런데 죄송하게 배달상품은 없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원래 페이팔을 통해 '후원금 계좌'를 만들 경우 연간 후원액이 5만(천?)불을 넘게 되면 미국세무당국에 펀드레이징에 대한 정식허가를 받는 등 귀찮은 일이 생긴다길래, "지나치게 많은 후원금이 쏟아질까봐" 지레 겁을 먹고 후원금 계좌 대신 일반상품 계좌로 만들었습니다. 그럼 나중에 세금정산 때 받은 금액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되니까요. 제가 좀 낙천적입니다. 그랬는데.....앞서 말씀드린대로 사무엘님께서 3년 간 처음이자 유일한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상품은 없지만 원하시는 주제에 대해 능력껏 글을 포스팅하는 것으로 상품을 대체해 드리면 어떨까요? p.s. 참고로 후원금은 제가 수령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취소하실 수 있습니다. 최광민 2014-09-29 1:03 GMT-04:00 Samuel [via FORUM SCIENTIARUM] <[hidden email]>: 안녕하세요. 블로그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If you reply to this email, your message will be added to the discussion below:
http://forum-scientiarum.16390.x6.nabble.com/-tp4981842p49818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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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최광민 |
In reply to this post by Samuel
안녕하세요 주인장님 ㅎㅎ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여쭤보러 왔습니다. 요즘 관심있게 읽고 있는 책이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라는 책입니다. 저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도 같은 류의 책인 듯합니다.. 주인장님은 저자들의 저러한 신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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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렌 암스트롱의 책(들)은 특별히 새로운 (혹은 충격적인) 이론들을 제시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주류) 학설을들 종합하고 풀어내는 입장을 취합니다. 그래서 학술적인 내용을 다루긴 하지만 대중적이기도 하죠. 요새는 이슬람에 꽤 과도하게 온정적인 입장을 보여 다소 균형을 잃은 감이 있습니다. [2] 포이에르바흐는 까마득한 옛날 학부시절에 (게다가 카알 막스 책을 읽다 덤으로) 읽어서 세부적인 내용까진 모두 기억할 순 없지만, 카렌 암스트롱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에서 씌여진 전형적인 헤겔 좌파식 철학저술입니다. 그래서 종교사의 입장에 서 있는 암스트롱과 포이에르바흐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 [3]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학계에 차고 넘쳐나는 학설들 가운데 하나로 보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짜피 "판단은 각자의 몫"일테니까요. 최광민 |
답변 감사드립니다 ^^ (매번 큰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개인적인 질문이라 원치 않으시면 대답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ㅎㅎ (꼭...해주셨으면 좋겠지만요..^^;;)
초인님은 기독교인이신가요? 기독교인이시라면 왜 기독교인이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카렌 암스트롱의 입장은 기존 학설들을 종합하고 풀어낸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학설들에 대해서 초인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초인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예수 와 붓다를, 모세의 10계명과 아케나톤 10계명 등을 비교분석해주신 것처럼 이것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
-----Original Message----- 카렌 암스트롱의 책(들)은 특별히 새로운 (혹은 충격적인) 이론들을 제시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주류) 학설을들 종합하고 풀어내는 입장을 취합니다. 그래서 학술적인 내용을 다루긴 하지만 대중적이기도 하죠. 요새는 이슬람에 꽤 과도하게 온정적인 입장을 보여 다소 균형을 잃은 감이 있습니다. [2] 포이에르바흐는 까마득한 옛날 학부시절에 (게다가 카알 막스 책을 읽다 덤으로) 읽어서 세부적인 내용까진 모두 기억할 순 없지만, 카렌 암스트롱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에서 씌여진 전형적인 헤겔 좌파식 철학저술입니다. 그래서 종교사의 입장에 서 있는 암스트롱과 포이에르바흐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 [3]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학계에 차고 넘쳐나는 학설들 가운데 하나로 보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짜피 "판단은 각자의 몫"일테니까요. 최광민 If you reply to this email, your message will be added to the discussion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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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감사드립니다 ^^ > > (매번 큰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 >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개인적인 질문이라 원치 않으시면 대답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ㅎㅎ (꼭...해주셨으면 좋겠지만요..^^;;) > > 초인님은 기독교인이신가요? 기독교인이시라면 왜 기독교인이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기독교인입니다. 신학적으로는 꽤 보수에 속할 것이고, 사회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다소 좌파에 온정적인 중도-회색분자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학생 시절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은 그 신조가 건전하다면 교단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교리적으로 제한적 에큐메니즘을 지지하는, 그러나 교회활동을 열심히 않/못해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있지는 않은/못한 평신도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저는 AD 1-5세기까지의 '보편'교회가 '보편적으로 동의했던' 신조들을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믿는 축에 속합니다. 소위 paleo-orthodoxy라고들 하죠. 제 입장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6.html > 그리고 카렌 암스트롱의 입장은 기존 학설들을 종합하고 풀어낸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학설들에 대해서 초인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초인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저는 비-기독교도 학자들이 신, 예수, 성서, 기독교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에 대해 기독교도가 뭐라고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전통적 기독교가 가르쳐 온 교리를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해당 주제를 다루게 될 경우, 그들이 (신을 배제한) 그들의 잣대로 주제를 풀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따라서 비-기독교도 학자들의 저술에 대한 제 평가는 그들이 자료의 인용과 해석에 있어서 (1) 그들의 틀 안에서 (2) 최대한 정확한 자료와 가정을 바탕으로 (3) 얼마나 최대한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냈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들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귀 기울일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을 배제한다거나, 혹은 성서가 객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문서가 아니란 관점 하에서 동일한 주제를 본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기독교도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훌륭한 참고자료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물론 모든 학자들이 이런 수준으로 엄정한 것은 아니고 자료의 인용과 해석에 있어 정크들이 난무하기도 하죠.) 이런 사람들을 반박한다면서 성서를 들이미는 기독교도들이 많은데, 이것은 좀 난감한 접근법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제가 특별히 관심있는 그룹의 학자들은 기독교도라면서 위의 관점을 취하는 연구자들, 특별히 신학자들입니다. 가령, (신학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꽤 모호한 종교적 입장을 취하는 카렌 암스트롱은 한때 로마카톨릭 수녀이기도 했고, 최근에 사망한 지저스세미나의 창립멤버 중 하나인 마커스 보그는 열성적인 성공회 신자이기도 했죠. 아예 기독교를 떠난 바트 어만 같은 이들은 열외로 치더라도, 위와 같은 연구자들 (특별히 진보/자유주의 신학자들)에 대해선 꽤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2/11/blog-post_9257.html > (혹시 괜찮으시면 예수 와 붓다를, 모세의 10계명과 아케나톤 10계명 등을 비교분석해주신 것처럼 이것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자료나 가정의 정확성만 입증하면 되는 {예수 vs. X} 시리즈와 달리, 지금 말씀하신 비교는 꽤 방대하고, 또 분명한 결론이 날 수 없는 주제라서 제 능력이나 관심을 벗어나는 일 같습니다. 저는 압도적 증거우위가 없다면 대체로 관조하는 입장입니다. 최광민 |
답변 감사드립니다. 에타 린네만 교수의 글은 소름이 돋네요..
뭔가 어림짐작으로 이해가 갑니다만 제 머리로는 아직 확실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식과 지혜가 너무 부족합니다... 계속해서 읽고 곱씹으면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신을 믿으려면 제대로 알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계속 관심이 생겼고 시간을 보냈던거고요.. (제 악하고 나약한 정체성을 신 안에서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근데 '제대로' 아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오늘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누가 어떤 것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지...
믿음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다시 한번 믿기를 선택하겠다고 다짐하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믿음의 선배님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제게도 임하셔서 마음에 확신을 주셨으면 하는데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ㅎㅎ
다시 한번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 -----Original Message----- > > 답변 감사드립니다 ^^ > > (매번 큰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 >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개인적인 질문이라 원치 않으시면 대답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ㅎㅎ (꼭...해주셨으면 좋겠지만요..^^;;) > > 초인님은 기독교인이신가요? 기독교인이시라면 왜 기독교인이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기독교인입니다. 신학적으로는 꽤 보수에 속할 것이고, 사회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다소 좌파에 온정적인 중도-회색분자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학생 시절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은 그 신조가 건전하다면 교단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그러나 교리적으로 제한적 에큐메니즘을 지지하는, 그러나 교회활동을 열심히 않/못해)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있지는 않은 평신도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저는 AD 1-5세기까지의 '보편'교회가 '보편적으로 동의했던' 신조들을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믿는 축에 속합니다. 소위 paleo-orthodoxy라고들 하죠. 제 입장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 그리고 카렌 암스트롱의 입장은 기존 학설들을 종합하고 풀어낸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학설들에 대해서 초인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초인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저는 비-기독교도 학자들이 신, 예수, 성서, 기독교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에 대해 기독교도가 뭐라고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전통적 기독교가 가르쳐 온 교리를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해당 주제를 다루게 될 경우, 그들이 (신을 배제한) 그들의 잣대로 주제를 풀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따라서 비-기독교도 학자들의 저술에 대한 제 평가는 그들이 자료의 인용과 해석에 있어서 (1) 그들의 틀 안에서 (2) 최대한 정확한 자료와 가정을 바탕으로 (3) 얼마나 최대한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냈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들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귀 기울일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을 배제한다거나, 혹은 성서가 객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문서가 아니란 관점 하에서 동일한 주제를 본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기독교도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훌륭한 참고자료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물론 모든 학자들이 이런 수준으로 엄정한 것은 아니고 자료의 인용과 해석에 있어 정크들이 난무하기도 하죠.) 이런 사람들을 반박한다면서 성서를 들이미는 기독교도들이 많은데, 이것은 좀 난감한 접근법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제가 특별히 관심있는 그룹의 학자들은 기독교도라면서 위의 관점을 취하는 연구자들, 특별히 신학자들입니다. 가령, (신학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꽤 모호한 종교적 입장을 취하는 카렌 암스트롱은 한때 로마카톨릭 수녀이기도 했고, 최근에 사망한 지저스세미나의 창립멤버 중 하나인 마커스 보그는 열성적인 성공회 신자이기도 했죠. 아예 기독교를 떠난 바트 어만 같은 이들은 열외로 치더라도, 위와 같은 연구자들 (특별히 진보/자유주의 신학자들)에 대해선 꽤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 대략 이런 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 (혹시 괜찮으시면 예수 와 붓다를, 모세의 10계명과 아케나톤 10계명 등을 비교분석해주신 것처럼 이것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자료나 가정의 정확성만 입증하면 되는 {예수 vs. X} 시리즈와 달리, 지금 말씀하신 비교는 꽤 방대하고, 또 분명한 결론이 날 수 없는 주제라서 제 능력이나 관심을 벗어나는 일 같습니다. 저는 압도적 증거우위가 없다면 대체로 관조하는 입장입니다. 최광민 If you reply to this email, your message will be added to the discussion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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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충고가 있습니다.
Intellige ut credas verbum meum; 이해하라, 그러면 내 말을 믿게 되리라. sed crede ut intelligas verbum Dei 믿으라, 그러면 신의 말을 이해하게 되리라. 이 둘을 함께 견지하지 못하는 신앙은, 언젠간 결국 표류하게 됩니다. 최광민 |
안녕하세요 초인님. 한가지 여쭤볼게 있어서 글 남깁니다 ^^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이단과 같은 것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는 시각의 차이) 기독교에게 있어서 이슬람은 이단과 같은 것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끝이 아닌 마호메트를 마지막 신의 사자로 보는 차이) (위에 쓴 것들만이 두 종교 간의 차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을의 사랑을 드러내셨고 지켜야 할 법들과 규례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들보다는 그 마음, 중심이 중요함을 역설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유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지요. 이 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굳이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셔야했죠? 처음에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들과 왜 이렇게 다른 말씀을 주신것인가요?
정말로 예수님은 지금 사도바울과 제자들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기독교라는 종교를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었나요..?
감사합니다..! -----Original Message----- Intellige ut credas verbum meum; 이해하라, 그러면 내 말을 믿게 되리라. sed crede ut intelligas verbum Dei 믿으라, 그러면 신의 말을 이해하게 되리라. 이 둘을 함께 견지하지 못하는 신앙은, 언젠간 결국 표류하게 됩니다. 최광민 If you reply to this email, your message will be added to the discussion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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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이단과 같은 것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는 시각의 차이)
기독교에게 있어서 이슬람은 이단과 같은 것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끝이 아닌 마호메트를 마지막 신의 사자로 보는 차이) (위에 쓴 것들만이 두 종교 간의 차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을의 사랑을 드러내셨고 지켜야 할 법들과 규례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들보다는 그 마음, 중심이 중요함을 역설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유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지요. 이 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굳이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셔야했죠? 처음에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들과 왜 이렇게 다른 말씀을 주신것인가요? 정말로 예수님은 지금 사도바울과 제자들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기독교라는 종교를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었나요..? ------------------------------------------------------------------------------------------------------------------------------------------------------------------- ===> 역시 BIG QUESTION 을 또 던져 주시네요. BIG QUESTION에 대한, 특히 신의 의지나 의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제 답은 거의 늘 "Only God knows WHY" 입니다만 (특별히 " 왜 굳이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셔야했죠?"에 대한 답), 그럼 후원을 받은 입장에선 좀 무책임한 답인 듯 하여 제 생각만 가볍게 적겠습니다. 아마도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들은 (아마도 잘 아시겠지만) {히브리서}에 등장할 것 같습니다. 던져주신 질문에 답하기 앞서서 몇가지 정리할 점이 있습니다. #1 {복음서} 속 예수의 가르침과 바울 혹은 다른 신약성서의 문서 속의 예수의 가르침은 다른가? #2 예수와 율법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선 #1 자체가 big question 이긴 하지만, 이 질문을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 이후 논의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보통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의 복음"과 "예수에 관한 복음"을 나누고, 전자와 후자에 선을 긋습니다. 이 입장을 아주 솔직하게 수용하면, 역사적 기독교는 그냥 허구 위에 세워진 허상의 종교이기 때문에, 논의를 더 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소위 그 예수의 "원 복음" 만으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재구성하긴 힘들겠죠. 아마 "사회혁명", "정신혁명" 정도의 철학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만약 같은 것으로 본다면, 신약성서에서 구원과 관련되어 말해지는 맥락에서 #2 "율법"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정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들보다는 그 마음, 중심이 중요함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예수는 613개조에 달하는 토라의 율법조항들 가운데 더러를 자신의 권위로 "무효화" 시킵니다. {복음서}의 기록을 사실로 수용한다면, 예수의 의도는 "율법과 예언자의 강령 (사랑)"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바리새파는 이 토라의 조항에 장로들의 관습/유전을 더해 만든 할라카를 실생활에도 적용시켰습니다.) 그럼 "어떤 율법"을 "완성"하는가하는 질문이 남게 됩니다. 앞서 말한 토라의 613개 율법 대부분은 사실은 제사와 관련된 조항들입니다. {복음서}와 {히브리서} (혹은 {로마서})의 문맥을 함께 읽으면, {신약성서}에서 "율법"을 말할 때는 "먹기 전에 손 씼어라"라는 식의 조항을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율법의 핵심, 즉 "죄는 피로 갚는다"를 대체로 의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1) 신을 사랑하고 (2) 이웃을 사랑하라, 즉, "사랑"이란 화두로 유대교를 "갱신"하려고 한 것일까요? 갱신이 목표였다면 왜 폐지/완성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또 모세의 일부 가르침을 자신의 권위로 무효화시켰을까요? 이 경우 이미 해당 율법은 예수의 권위로 "폐지"된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는 예수의 진술을 이 경우 모순이 발생합니다. 충돌없이 이를 해석하는 법은 예수가 의도한 "율법의 완성"은 "죄는 피로 갚는다"는 핵심율법의 완성이었다고 보는 것이겠죠. (이것이 {히브리서}가 다루는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율법은 모형이고 예수의 죽음은 그 모형이 실현된 것이 됩니다. 예수가 십자가형에 앞서 이를 의도했는가는 우리가 {복음서}를 믿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새 계약"이라 부를 수 있는데,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거의 모두 모세율법이 "완전히" "영구적이고 최종적으로" 새 계약으로 대체되었다는 관점을 견지했습니다. 최광민 |
답변 감사드립니다. ^^ Only God know WHY..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는거겠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맞지 않고 모순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ㅜㅜ
제가 학생으로서 공부를 해야하는데 자꾸 이런 것들이 마음에 걸리고 궁금하고 그래서 시간을 이런 쪽에 너무 많이 투자하는 것 같습니다.. 혼란스러울때마다 초인님으로부터 귀한 조언을 들을 수 있고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한국 어디에 사시나요? 밥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Original Message-----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이단과 같은 것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는 시각의 차이) 기독교에게 있어서 이슬람은 이단과 같은 것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끝이 아닌 마호메트를 마지막 신의 사자로 보는 차이) (위에 쓴 것들만이 두 종교 간의 차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을의 사랑을 드러내셨고 지켜야 할 법들과 규례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들보다는 그 마음, 중심이 중요함을 역설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유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지요. 이 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굳이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셔야했죠? 처음에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들과 왜 이렇게 다른 말씀을 주신것인가요? 정말로 예수님은 지금 사도바울과 제자들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기독교라는 종교를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었나요..? ===> 역시 BIG QUESTION 을 또 던져 주시네요. BIG QUESTION에 대한, 특히 신의 의지나 의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제 답은 거의 늘 "Only God knows WHY" 입니다만 (특별히 " 왜 굳이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셔야했죠?"에 대한 답), 그럼 후원을 받은 입장에선 좀 무책임한 답인 듯 하여 제 생각만 가볍게 적겠습니다. 아마도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들은 (아마도 잘 아시겠지만) {히브리서}에 등장할 것 같습니다. 던져주신 질문에 답하기 앞서서 몇가지 정리할 점이 있습니다. #1 {복음서} 속 예수의 가르침과 바울 혹은 다른 신약성서의 문서 속의 예수의 가르침은 다른가? #2 예수와 율법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선 #1 자체가 big question 이긴 하지만, 이 질문을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 이후 논의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보통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의 복음"과 "예수에 관한 복음"을 나누고, 전자와 후자에 선을 긋습니다. 이 입장을 아주 솔직하게 수용하면, 역사적 기독교는 그냥 허구 위에 세워진 허상의 종교이기 때문에, 논의를 더 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소위 그 예수의 "원 복음" 만으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재구성하긴 힘들겠죠. 아마 "사회혁명", "정신혁명" 정도의 철학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만약 같은 것으로 본다면, 신약성서에서 구원과 관련되어 말해지는 맥락에서 #2 "율법"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정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들보다는 그 마음, 중심이 중요함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예수는 613개조에 달하는 토라의 율법조항들 가운데 더러를 자신의 권위로 "무효화" 시킵니다. {복음서}의 기록을 사실로 수용한다면, 예수의 의도는 "율법과 예언자의 강령 (사랑)"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바리새파는 이 토라의 조항에 장로들의 관습/유전을 더해 만든 할라카를 실생활에도 적용시켰습니다.) 그럼 "어떤 율법"을 "완성"하는가하는 질문이 남게 됩니다. 앞서 말한 토라의 613개 율법 대부분은 사실은 제사와 관련된 조항들입니다. {복음서}와 {히브리서} (혹은 {로마서})의 문맥을 함께 읽으면, {신약성서}에서 "율법"을 말할 때는 "먹기 전에 손 씼어라"라는 식의 조항을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율법의 핵심, 즉 "죄는 피로 갚는다"를 대체로 의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1) 신을 사랑하고 (2) 이웃을 사랑하라, 즉, "사랑"이란 화두로 유대교를 "갱신"하려고 한 것일까요? 갱신이 목표였다면 왜 폐지/완성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또 모세의 일부 가르침을 자신의 권위로 무효화시켰을까요? 이 경우 이미 해당 율법은 예수의 권위로 "폐지"된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는 예수의 진술을 이 경우 모순이 발생합니다. 충돌없이 이를 해석하는 법은 예수가 의도한 "율법의 완성"은 "죄는 피로 갚는다"는 핵심율법의 완성이었다고 보는 것이겠죠. (이것이 {히브리서}가 다루는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율법은 모형이고 예수의 죽음은 그 모형이 실현된 것이 됩니다. 예수가 십자가형에 앞서 이를 의도했는가는 우리가 {복음서}를 믿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새 계약"이라 부를 수 있는데,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거의 모두 모세율법이 완전히 새 계약으로 대체되었다는 관점을 견지했습니다. 최광민 If you reply to this email, your message will be added to the discussion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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