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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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sejeong-na
군대 갔다오고 오래간만에 질문 올립니다
예전에 여기서 예수와 멤라에 대한 글을 읽은 후 오래간만에 다른 책에서 플로티노스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삼위일체에 관련된 만할 부분을 보게되었습니다. 바로 일자와 일자의 유출로서 나오는 정신, 영혼에 관한 부분
에 대한 부분인데요
정말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흡사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1.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유대교 본래의  것인가? 본래의 것이 아닌가?
2. 맞다면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3. 기독교의 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등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만일 이 둘의 철학을 제외하고 기독교의 신학은 존재가 가능한 것인가?
 4. 위 두 철학이 기독교에게 준  안 좋은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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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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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별 탈없이 예비군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질문하신 것들에 대해 제 견해를 적겠습니다.

우선은 에띠엔 질송의 {중세철학사}의 첫 3장을 읽어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12/3.html


0. 예전에 여기서 예수와 멤라에 대한 글을 읽은 후 오래간만에 다른 책에서 플로티노스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삼위일체에 관련된 만할 부분을 보게되었습니다. 바로 일자와 일자의 유출로서 나오는 정신, 영혼에 관한 부분 에 대한 부분인데요 정말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흡사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답변]

블로그로 답변을 옮겼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21/01/blog-post_29.html


1.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유대교 본래의  것인가? 본래의 것이 아닌가?

[답변]

블로그로 답변을 옮겼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21/01/blog-post_29.html

2. 맞다면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답변]

블로그로 답변을 옮겼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21/01/blog-post_29.html

3. 기독교의 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등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만일 이 둘의 철학을 제외하고 기독교의 신학은 존재가 가능한 것인가?

[답변]

블로그로 답변을 옮겼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21/01/blog-post_29.html


4. 위 두 철학이 기독교에게 준  안 좋은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

블로그로 답변을 옮겼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21/01/blog-post_29.html


최광민


P.S. 지난번에 이메일로 물으신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셨나요? 전 주말에 이 동네로 N. T. Wright가 강연하러 와서 한번 들으러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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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sejeong-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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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예전에, 한번 톰라이트, 몰트만,  유대교 본연의 메시아니즘에 관련된 질문 쓰다가 말았었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저도 뭐를 질문했는지 까먹고 있었네요. 죄송하지만 혹시 기억하신다면 말씀해주실수 있는지?
.
0-1 . 칼 바르트를 위주로 한 신정통주의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네요, 긍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제 기독교 성향이  계속 합동측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통합이나, 기장측에 가까워지다보니 이런 질문은 드리는 것 같네요>

0-2(추신). 자유주의를  예수의 신성을 완전 부인하고 나선 슈바이처나, 볼트만의 의견 사례를 들어 까다니 잔인하시네요. ㅎㅎ

0-3 세계와 고난 받는 성령이라, 진보쪽 신학자로는 몰트만이 있겠군요. 하지만 그냥 단순히 성령을 일개 개인안에 있는 신앙의 대상이라고 볼수 있을까요?,  기독교의 구약만 보더라도 고난받고 억눌린 사람들의 서러움과 아픔, 그리고 이에 대해 자기 민족 이스라엘과 논쟁하는 신의 모습이 많이 있고,

사복음서 안에 있는 예수의 바리새인 비난도 그당시 자기 민족을 향한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감히 제가 생각하기로는, 몰트만이나 민중 신학자들 말마따나 기독교의 성령은 고난받는 세계와 공감하면서 동시에 복음주의자들 말대로 개인의 신앙을 이끌어가는 측면을 같이 가진것 같습니다.
 

또 다시한번 플로티노스에 대해서 질문해보겠습니다
1. 플로티노스는 일자에게서 처음으로 유출된 정신에서 다시 영혼이 유출된다 봤죠. 제가 읽은 책은 이를 필리오케 논쟁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나요?[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처럼 성부에게서만 성령이 나온다고 주장했는데, 6세기경 서방교회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성자에게도 나온다는 이른바 필리오케설을 주장함으로써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큰 논란이 벌어졌다] -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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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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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예전에, 한번 톰라이트, 몰트만,  유대교 본연의 메시아니즘에 관련된 질문 쓰다가 말았었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저도 뭐를 질문했는지 까먹고 있었네요. 죄송하지만 혹시 기억하신다면 말씀해주실수 있는지?
.
0-1 . 칼 바르트를 위주로 한 신정통주의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네요, 긍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제 기독교 성향이  계속 합동측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통합이나, 기장측에 가까워지다보니 이런 질문은 드리는 것 같네요>


[답변]

사실 전 현대 신학자들에겐 특별한 관심이 없어서 딱히 제 견해를 밝힐 만한 것은 없습니다.

0-2(추신). 자유주의를  예수의 신성을 완전 부인하고 나선 슈바이처나, 볼트만의 의견 사례를 들어 까다니 잔인하시네요. ㅎㅎ 

[답변]

자유주의가 워낙 광범위해서 사실 저도 어느 그룹의 자유주의자에 비판의 초점을 맞춰야 할지 좀 막연하네요. (특별히 제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ㅋ)


0-3 세계혼과 세계와 고난 받는 성령이라, 진보쪽 신학자로는 몰트만이 있겠군요. 하지만 그냥 단순히 성령을 일개 개인안에 있는 신앙의 대상이라고 볼수 있을까요?,  기독교의 구약만 보더라도 고난받고 억눌린 사람들의 서러움과 아픔, 그리고 이에 대해 자기 민족 이스라엘과 논쟁하는 신의 모습이 많이 있고, 사복음서 안에 있는 예수의 바리새인 비난도 그당시 자기 민족을 향한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감히 제가 생각하기로는, 민중신학자들의 말마따나 기독교의 성령은 고난받는 세계와 공감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신앙을 이끌어가는 측면을 같이 가진것 같습니다. ---< 민중신학에 어느정도 공감하는 부분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신봉하는 것도 아닙니다. >

[답변]

제 견해는 그런 성령 이해를 "세계혼"이란 다소 범신론적 이해로 풀이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또 다시한번 플로티노스에 대해서 질문해보겠습니다 1. 플로티노스는 일자에게서 처음으로 유출된 정신에서 다시 영혼이 유출된다 봤죠. 제가 읽은 책은 이를 필리오케 논쟁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나요?[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처럼 성부에게서만 성령이 나온다고 주장했는데, 6세기경 서방교회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성자에게도 나온다는 이른바 필리오케설을 주장함으로써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큰 논란이 벌어졌다] -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김용규

[답변]

블로그로 답변을 옮겼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21/01/blog-post_29.html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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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sejeong-na
1. 제 견해는 그런 성령 이해를 "세계혼"이란 다소 범신론적 이해로 풀이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 그렇다면 제 성령 이해가 아주 이상한 생각은 아니군요.(꼭 세계속에서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주장한다고 해서, 범신론이라고 볼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딱히 문제가 없다면 계속 이런 이해방식을 이어가도 괜찮나요?
아무래도 제가 가진 생각이 제가 속한 교회(예장 합동)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 보니 망설여지는군요.

2. 교부 철학 내지 조직신학 관련해서 책을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잡설 1. 톰 라이트 강연은 들으셨나요? 책으로 몇번 읽어보긴 했을뿐 그 사람 강연하는 건 듣지 못했었는데, 부럽습니다.한국은 잘 안 오는 가보네요. 한번 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외람된 말씀이다만 나중에 들으시고 한번 톰라이트랑 교부들이랑 비교해서 글 한번 올려주실 수 있나요?

잡설 2.  외람되나 최광민 박사님(or 교수님?)께서는 직업이 신학과는 정 반대의 과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신학을 공부하셨는지 여쭤볼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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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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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 성령 이해가 아주 이상한 생각은 아니군요.(꼭 세계속에서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주장한다고 해서, 범신론이라고 볼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딱히 문제가 없다면 계속 이런 이해방식을 이어가도 괜찮나요? 아무래도 제가 가진 생각이 제가 속한 교회(예장 합동)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 보니 망설여지는군요.

[답변]

플라톤/플로티노스 식의 세계혼 개념은, 플로티노스식으론 만유에 신성이 내재해있다, 혹은 보다 플라톤 식으론 우주 전체는 개개의 생명을 품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란 개념입니다. 이 관점에서 성령을 이해하게 되면 신 혹은 성령이 피조물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 혹은 성령 그 자신이 피조물의 고통을 당한다는 식으로 풀이됩니다. 사실상 이런 범신론 혹은 범유재신론의 입장에선 피조물과 신/성령이 분리되지 않으니까, 피조물의 고통은 곧 그 상위체인 신의 고통이란 셈이죠. 많은 소위 환경신학이나 일부 (여성)해방신학에서 이런 식으로 풀이하는 시도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서 피조물의 고통에 대해 신이 말할 때, 신은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았"고 혹은 "들었다"는 제 3자적 시점을 취합니다. 이것은 제 3자 관점에서의 공감이지, 범신론/범재신론적 공감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울러 제가 중학생 시절에 장로교 합동 측 교회에서 세례를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합동 측 신학을 꼭 따른다고 말하긴 어폐가 있겠습니다. 제가 세례 받을 때 목사님이 "합동 측 신학을 고수하지 않으면 이 세례는 무효"라고 다짐하신 것도 아니고, 제가 합동 측에서 안수받은 장로나 목사도 아니니까요 (전 집사도 아닙니다).

이 글에 적었다시피,

http://kwangmin.blogspot.kr/2013/01/blog-post_6.html

전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공회, 루터교회, 퀘이커, 그리스도의교회 (와 그들의 몇몇 분파들) 등등과 정교회도 다녀보았고, 특별히 이들 교단이 1-5세기 역사적 교회의 보편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면 수용하는 제한적 에큐메니즘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를 특별히 "합동 측"이라고 여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2. 교부 철학 내지 조직신학 관련해서 책을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교부철학이라면 어제 말씀드린 에티엔 질송의 {중세철학사}를 추천합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실 것이라면 아마 이 책은 피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2세기 유스티노스에서 15세기 니콜라스 쿠자누스까지를 다룹니다. 이 책의 장점은 중세기독교신학에 미친 아랍철학을 한 장을 할애해서 자세히 다룬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책이 좀 지루합니다 =).

조직신학은....제가 아무래도 전공자가 아니니만큼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최근에 게시판에 가입하신 박태순 목사님이 뉴스앤조이 에르고니아 신학마당의 신학실장이시더라고요.

http://forum-scientiarum.16390.x6.nabble.com/-td4982012.html

박태순 목사님이 구약학을 전공하신 신학박사이시니 책 선정에 도움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잡설 1. 톰 라이트 강연은 들으셨나요? 책으로 몇번 읽어보긴 했을뿐 그 사람 강연하는 건 듣지 못했었는데, 부럽습니다.한국은 잘 안 오는 가보네요. 한번 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외람된 말씀이다만 나중에 들으시고 한번 톰라이트랑 교부들이랑 비교해서 글 한번 올려주실 수 있나요?

[답변]

툼 라이트는 이번에 종교-과학 간의 대화 프로젝트인 '베리타스" 포럼 초청으로 오는 것인데요, 다음 주 월요일 시간이 좀 빠듯해서 침례교회에서 하는 두번째 강연에만 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십자가 희생의 의미"인 것으로 보아 아마 (분며히?) 칭의론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특별히 교부들과 어떻게 연결이 될지는 들어봐야 알겠네요.


잡설 2.  외람되나 최광민 박사님(or 교수님?)께서는 직업이 신학과는 정 반대의 과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신학을 공부하셨는지 여쭤볼수 있을까요?

[답변]

신학이라기 보다는 원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교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라면 정확히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 소위 노방전도를 하다 마주친 여호와의 증인 신자 두 명으로부터 "그런데 장로교와 감리교 차이가 뭔지는 아니?"란 질문을 듣고 난 후 였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kr/2015/07/vs-7.html 

이 글의 "기억 편"에 삼위일체에 대한 중학시절의 제 기억도 적었습니다. 아울러 에큐메니즘을 지지한다면 도대체 어느 그룹까지를 "내 편"으로 간주해야 할 지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신학적 쟁점들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사대정신 비판 등 카피캣 관련된 것은 이 작업의 부산물입니다.

전 기본적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신학 혹은 교리사를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특별히 교부들의 글 원전독서를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고 신학적 주제를 역사적 맥락없이 뚝 떼어서 보게되면 그야말로 사변을 위한 사변에 불과해져 버리게 되니까요. (그래서 전 현대신학을 "신학"이라고 불러야 할지 "종교철학"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그리고 그냥 "취미"라고 여겨주시면 저도 편하겠습니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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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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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광민님이 합동측 신자라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24년간 합동측 교회를 다녔고, 근본주의(말로만)와 번영주의를 앞세우는 목사들로부터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견해를 종종 타인과(제가 다니는 교회) 이야기하면 좀 심하게 비판을 많이 당했죠.


1. 흠.. 근데 약간 미묘합니다. 기성 교인들은 성령의 내주를 이야기 하지요. 오순절 사건이나, 구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요한 계시록 3장 20절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고린도전서 3장 16절 같은기타 구절을 근거로 해서요.
그렇게 되면 물론 그 사람 자신이 성령이 되는 것은 아니나, 성령은 내주된 사람과 같이 느끼는 것 아닙니까?
또 내주된 사람에게 거하는 성령 자체가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신의 3인칭적 시점(ex: 그들의 고통을 보았다 뭐 등)에서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광민님의 말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식으로 해석이 되어지면, 성령은 범재신론 적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죠.  
참 미묘합니다... 이 부분이.    

도움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에 문구하나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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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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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광민님이 합동측 신자라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24년간 합동측 교회를 다녔고, 근본주의와 번영주의를 앞세우는 목사들로부터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견해를 종종 타인과(제가 다니는 교회) 이야기하면 좀 심하게 비판을 많이 당했죠.

==> 제가 보기엔 근본주의와 번영주의가 같이 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1. 흠.. 근데 약간 미묘합니다. 기성 교인들은 성령의 내주를 이야기 하지요. 오순절 사건이나, 구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요한 계시록 3장 20절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고린도전서 3장 16절 같은기타 구절을 근거로 해서요.  그렇게 되면 물론 그 사람 자신이 성령이 되는 것은 아니나, 성령은 내주된 사람과 같이 느끼는 것 아닙니까? 또 내주된 사람에게 거하는 성령 자체가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신의 3인칭적 시점(ex: 그들의 고통을 보았다 뭐 등)에서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광민님의 말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식으로 해석이 되어지면, 성령은 범재신론 적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죠.  참 미묘합니다... 이 부분이.    

[답변]

블로그로 답변을 옮겼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21/01/blog-post_29.html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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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라이트는 만나고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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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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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미터 거리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저희 동네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강의 영상입니다.

https://vimeo.com/214610631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의미}가 제목이었는데, 전 바울 등을 인용하며 그의 브랜드네임인 "칭의론"을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한 "속죄론"에 대한 담론이 주제엿습니다. 마지막 50분 이후부터 고대로부터의 서방신학이 "속죄론"/"대속론"을 어떻게 왜곡시켰는가를 가지고 그의 이론을 정리합니다.

라이트는 서구신학의 오류를 세가지로 정리합니다. (예전에 물으신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네요).

[1] 서구 신학은 종말론을 (중기)플라톤화하여, "새로운 신의 나라"를 피안의 세계로 왜곡시켜 버렸다.

[2] 그 결과 서구 신학은 현실적인 새창조의 영역, 즉 "인간론"의 영역을 개인수준의 "윤리"로 축소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윤리"는 새로운 피조물의 가지게 될 속성이지, 그 자체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

[3] 서구 신학은 형벌대속 (penal substitution)이론에 지나치게 강조하여 "구원론"을 이교화하는 우를 범했다. 대신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악의 세력을 무장해제했다"라고 보는 (보다 동방교회의 전통이자 AD 2-3세기 교부들의 시각인) 승리자 Christus Victor 이론이 보다 성서 (특별히 복음서)에 부합한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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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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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근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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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삼위일체론 플로티노스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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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가 말하는 "속죄론"에 대한 근거를 말하는 건가요?

물론 있습니다. 라이트가 이야기하는 속죄론의 형태가 그가 새롭게 창안한 것도 아닙니다. 아마 아실지도 모르지만 "속죄", 혹은 "왜 예수가 죽어야만 했는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둔 역사적으로 다양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이론들은 언뜻 보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달리 보면 상호배타적이라기 보다는 상보적이기도 합니다. 주로 서방의 신학이 '속죄론'에 많은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원죄"에 대한 개념은 아무래도 동방보다는 서방에서 많이 강조되고 사유된 것이니까요.

역사적인 관점에서 크게 본다면,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포함한 주로 서방의 신학은 전통적으로 예수의 "죽음" 자체의 의미를 강조해 왔고, 동방은 "부활/승리"를 더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의 미사가 "희생제"라면, 정교회의 성찬식은 "감사제"의 성격을 갖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관점은 사실은 상보적입니다. 다만 전자를 강조하면 "구원의 원리"가, 후자를 강조하면 큰 틀에서의 "구원의 결과"가 강조되게 됩니다. 두 강조점에 따른 적용은 라이트 말처럼 사뭇 달라질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 '개인'이, 후자의 경우 현실 속에 구현된 '새로운 창조', '신의 나라'가 강조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신과 나 사이의 관계회복"이 강조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새로와진 세상에서의 신의 통치/지배"가 강조되는 것이니까요.  

라이트의 강의는 그런 취지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라이트가 속죄론을 약화시키고 펠라기우스적 입장을 취한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꽤 많죠. 대체로 바울의 서신은 전자가, 복음서의 관점은 후자가 강조된다는 것이 라이트의 견해이고, 그동안 서방신학의 속죄론은 복음서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주로 서신서에만 기초해서 속죄-부활의 큰 프레임을 왜곡시켰다는 것이 그의 겨견해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전 다소 "황희정승파"라서, 대체로 신학자들의 설명들에 대해 "당신 말도 옳고, 또 당신 말도 옳다"는 입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작업이 개념의 "선명성"을 강조하다보니 그들의 설명들이 서로 배타/이질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가령, 믿음이냐, 행위냐? 등등) 사실 크게 보거나 혹은 실제적인 적용에선 상보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