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것에 대해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로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기원전 15세기 경, 즉 아멘호테프 2세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전기설과 기원전 13세기 경, 람세스 2세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후기설이 있는걸로 아는데요 두가지 모두 어느 정도 논리와 허점이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정확하게 결론난 것은 없는걸로 압니다. 그런데 최근 넷상을 돌아다니다보니 출애굽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설이 있고 이게 학계의 정설이라는 소리가 있더군요. 대부분의 역사학자&고고학자들이 이집트 탈출 사건 전체를 역사적인 사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구요. 글쎄...제 생각에는 출애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이스라엘 민족의 숫자 같은건 물론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출애굽 자체가 있지도 않았다는 건 좀 의문이고, 그렇다면 전기설 후기설 같은 얘기는 왜 나오게 된건지 이해가 안되는데 혹시 자세한 답변을 부탁드려도 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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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바만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1] 전기설 전기설의 바탕은 구약성서 {열왕기 상편} 6장에 근거합니다. 즉, 솔로몬 성전의 건립연대가 이집트 탈출로부터 480년 이후라는 진술인데, 표준연대기에 따른다면 그것은 약 BC 1446년이 됩니다. 이 연도는 {열왕기 상편}의 기록이란 점 이외에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480년이란 것을 상징적인 수로 보는데, 가령 480을 20세대 (20 x 24년)을 뜻한다는 설이 있고, 또는 솔로몬의 제 1차 성전과 바빌론 유수 후의 제 2차 성전 사이의 기간이 480년이란 점을 들어 전자의 480년은 후자의 연도에 맞추기 위한 렌더링이란 설이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서}에서 예수의 족보가 "14대"...에 맞춰진 것처럼 그렇다는 가설입니다. [2] 후기설 후기설의 경우는 20세기 중반의 성서고고학자인 올브라이트가 제시한 것으로, BC 1200년대 초/중반을 그 시점으로 잡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몇몇 고고학적 증거의 지지를 받는데, 가령 BC 1200년대 초반에 제작된 메르넵타 석주에는 그 당시 이미 '이스라엘'인들이 카나안에 정주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당시 카나안 도시에서 발굴된 거주형태나 토기 형태가 이스라엘 고유형식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설명은 현재에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여호수아서}에 등장하는 몇몇 카나안 도시들은 BC 1200년대 무렵에 파괴되거나 버려진 것이 확실하지만, 다른 또 몇몇 도시들은 파괴된 흔적이 없거나 그 이전에 이미 버려진 것으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역시 고고학적인 증거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3] 허구설 기본적으로 이 설은 (1) 당시의 주변국 사료에 엑소더스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료적 문제, (2) 히브리인들의 엑소더스 경로와 광야에서의 40년 간의 경로, 및 카나안 초기 정주지에 대한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유물 발견이 매우 적거나 심지어는 불확실하다는 점에 기초한 것으로 발굴증거를 원칙으로 하는 고고학자들이 현대 선호하는 결론입니다. 이들은 동일한 이유로 전성기의 다윗-솔로몬 왕국 역시 일종의 부족연합국가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전기설은 구약성서의 그 구절을 문자적으로 수용할 때 얻어진 결론이고 (물론 구약성서의 표준연표가 정확하다는 가정에서), 허구설은 외부증거에 초점을 맞출때 얻어진 결론이고, 후기설은 대체로 절충적 입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후대 마네토나 (그에 반박해) 요세푸스가 전하는 내용은 연대를 추정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진술입니다. 최광민 |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추가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자면 아마르나 서신에 나오는 '하피루'가 '히브리'의 어원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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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이라기 보다는, 알고 있는 내용만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1] 유대인들이 어느 시점부터 자신들을 '히브리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히브리어에서의 어원은 아마도 '이브리'로 '히브리인'은 그 복수형인 '이브림'입니다. 그 어원은 '유랑자'에 해당합니다. [2] (흔히 사용되는 음가인) '하피루' 혹은 그와 유사한 (추정된 음가의) '명칭'을 가진 인구집단에 대한 기록은 아케나텐의 시절이던 이집트 18왕조보다 더 앞선 시기에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및 카나안 일대에서 등장합니다. 가장 오래된 설형문자는 BC 25세기까지 올라가 초기설형문자로 아마도 '사가수', 후대 아카드어로 '하바투'에 해당하는 그룹이 등장합니다. BC 18세기에 수메르측 기록에 시리아 북부와 연관된 '하비루'가 등장하고, BC 15세기에는 그림문자로 비적/강도란 뜻으로 새겨지는 셈족 계열의 '하피루'도 등장합니다. 아카드어 설형문자에는 '하피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들 인구집단은 단일집단으로 보여지지는 않으며 다만 특정지역과 연관된 그룹으로 학자들은 대체로 풀이합니다. [3] 아마르나 문건보다 조금 앞선 BC 14세기 이집트에서는 PR.W라는 명칭의 그룹이 등장하는데, 이집트 문자에는 자음만 있기 때문에 추정된 음가로는 '아피루'라고 흔히 여기고 있습니다 (W는 복수형). 이것은 아마도 아카드어의 하비루 혹은 하피루에 대응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르나 문건은 설형문자로 씌여진 아카드어 입니다.)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카나안 서부 해안지역의 요파를 공략할때 이 '아피루'들은 그 지역에 있던것 같습니다. 투트모세 3세의 아들인 아멘호테프 2세가 카나안을 공략한 BC 15세기 말에 카나안 지역에서 잡힌 포로 가운데 3600의 아피루도 등장합니다. 이보다 조금 뒤인 아케나텐 시절에 이 '하비루'는 카나안에서 활발한 (군사)활동을 벌이고 있음이 아마르나 문서에 등장합니다. [4] 결국 이 [사가수-하바투-하비루-아피루] 들의 활동범위를 보면 카나안 일대에 광범위한 시기에 분포한 집단으로 해석될 수는 있지만, 어떤 '민족'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5] 한편, 이와는 전혀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히브리인 (즉, 이브리, 이브림)을 {창세기}에 등장하는 "셈에게서도 아들이 태어났다. 에벨의 모든 후손이 그에게서 나왔는데, 그는 또한 야벳의 맏형이기도 하다."이란 구절에 등장하는 에벨 (Eber)이 '이브리'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같은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에벨은 노아와 셈의 자손이자 아브라함의 선조이므로, 그 이름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 '이브림'이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죠. 최광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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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ply to this post by humanist
안녕하세요,
점심 먹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연락드려봅니다. 사실 해당 주제와 관련하여 작년 가을 초에 인상깊은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았습니다. --- 제목은 {Patterns of Evidence: Exodus} --- 웹페이지: http://www.patternsofevidence.com/en/ 다큐멘터리는 왜 주류 고고학계의 정설에 따른 고대 이집트 연대기는 구약성서 {출애굽기}의 연대기와 약 400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가 하는 점을 다루면서, 그 이유는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파편화된 사료와 고고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BC 1000년 사이에 있는 몇몇 '암흑기'를 상정하는 과정에서 그 기간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역사와 카나안 역사가 서로 싱크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결과적으론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에서의 히브리인의 역사를 너무 늦은 지층대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란 이론입니다. 여러 고고학자가 등장하지만 대체로 (비주류) 영국 연구자인 David Rohl의 이론을 정리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저도 예전에 소위 "아케나톤 18계명"에 대한 반박을 쓰는 과정에서 알게 된 미국 고고학자 (이집트 룩소르에서 발굴하고 있습니다) 몇몇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문의해 보았는데 (모두 출애굽 시점에 관한 주류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이집트 연대표가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데 모두 동의하고는 있지만 자신들 생각에는 최대 200년 정도의 오차까지만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하더군요. 반면, 데이빗 롤은 더 큰 오차를 추정하고 있고, 그 근거를 이집트 역사에 등장하는 패턴, 카나안 역사에 등장하는 패턴, 그리고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패턴들의 유사점/동일점에서 찾습니다. 각각의 연표를 시간축 상에서 밀고 당기면서 맞춰보면 정확히 일치되는 시점이 있는데, 그때는 일반적으로 출애굽/엑소더스 시점이라고 여겨지는 이집트 신왕조가 아니라, 더 이전의 중왕조 때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진술들이 이집트와 카나안 역사에 동시대로 등장한다는 주장입니다. 저도 예전에 데이빗 롤의 주장을 접한 적은 있었는데 그때는 흥미로운 설 하나로만 여기고 무시했었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책을 빌려서 보니 주장이 꽤 타당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빗 롤의 책 가운데 {A Test of Time}를 읽어봤는데요, 롤이 나오는 다른 다큐멘터리에 보면 그의 서재에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꽂혀있는 걸로 봐선 ({세월의 풍상}?) 몇 년 전에 한국어로도 번역된 듯 합니다. 안 읽어보셨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롤이 제시한 "교정된" 연대표는 위키피디아에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ew_Chronology_%28Rohl%29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죠? 최광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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