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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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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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에 따라, 예수회 관련 음모(론)에 대한 토론장을 하나 신설하겠습니다.  토론이 정리되면 블로그에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음모론"으로 여기는 편이란 점을 밝히며, 관련된 많은 주장들의 근거가 (1) 희박하거나, (2) 과장되었거나, 혹은 (3) 왜곡/조작되었다는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근거자료 혹은 그 자료를 제시한 인물의 정체가 모호한 경우는 논쟁/토론에서 배제하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좀 코믹하게 쓰긴 했지만) 아래 글이 대체로 제가 취하는 입장입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2/11/3.html

물론 자료 및 주장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의견을 개진해주시면 됩니다.

다만, 제시되는 자료의 출처와 원문을 가급적 1차 자료 (원전)까지 직접 확인해서 올려주시면 혼란을 막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가 모든 자료를 일일히 확인해 볼 수는 없을테니까요.  

질문:


우선 첫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이런 동영상을 번역하실 생각은 없는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VFfbJt9wW-A

제가 자주 언급한 세계 비밀 엘리트 세력에 대한 것으로 첫번 책 <시대읽기>에서도 구체적으로 명시한 바 있습니다. 그것을 잘 뒷받침해주는 내용의 동영상인데요.

크립토 유대인 – 로마카톨릭 – 알함브라도 – 예수회 – 일루미나티 – 나찌즘 – 공산주의 – 뉴월드오더 - 사탄주의 - 반기독교 등으로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답변:


저녁 먹고 세 편의 강의 동영상을 들어보았습니다.  

예수회가 설립한 보스턴 칼리지 소속 마릭 교수의 저 책은 예전에 한 70% 정도 읽어본 적 있습니다. 로버트 마릭 교수는 역시 바티칸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예수회 대학인 포덤 대학에서 예수회 역사로 박사를 받은 예수회 역사 전문가입니다.

이 강의 내용은 예수회 관련 음모론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예수회의 초기 역사에 관한 그의 책을 요약정리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이 내용은 위에 말씀하신 "크립토 유대인 – 로마카톨릭 – 알함브라도 – 예수회 – 일루미나티 – 나찌즘 – 공산주의 – 뉴월드오더 - 사탄주의 - 반기독교 등으로 연결"되는 내용을 뒷받침한다고 말하긴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마릭 교수의 요점은 예수회 창설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등 예수회 초기 멤버들은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 (콘베르소)들의 예수회 가입에 우호적이었고, 15세기 부터 시작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종교적/인종적 "순혈정책"에 동조/굴복한 결과 예수회가16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의 예수회 가입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즉, 예수회 창설자들은 후대의 예수회와 달리 "반-유대주의자"들이 아니었다라며 예수회를 변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흡사 루터교인들이 "마르틴 루터가 원래부터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다"....라고 루터를 변호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물론 루터와는 달리 로욜라는 끝까지 반-유대적인 입장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물론 루터의 반-유대주의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교도들에 대한 분노였고, 로욜라의 경우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개종자들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뜻이니 비교가 동일하진 않습니다.

학생 시절 14세기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레콩키스타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16세기 초반 예수회가 설립되기 한 두 세대 전, 즉 이베리아 수복운동인 레콩키스타가 완성되던 당시의 이베리아 반도 인종/종교 문제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그런 배경에서 이 맥락을 이해하지 않으면 "배신당한 십자군 성전기사단들이 복수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프리메이슨이 되었다"는 식의 "성당기사단 Templar ~ 일루미나티 ~ 프리메이슨" 류의 음모론으로 흘러버리게 됩니다.  즉,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탄압당한 유대인들이 로마카톨릭 신자로 위장하고 예수회를 조직한 후 예수회를 이용해 세계정복을 추진 중에 있다"는 주장인 것이죠.

1492년 알함브라 포고령으로 유대인들은 개종하지 않으면 스페인에서 무일푼으로 추방되거나 처형되었습니다. 그때 수 십만의 유대인이 지브롤터를 건너 북아프리카로 추방되었고 이들이 동진하여 오스만 투르크 전역에 퍼지면서 오늘날의 세파르딤 유대인의 원류가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스페인에 남고자 했던 유대인들은 강제개종하여 로마카톨릭 신자가 되거나 혹은 카톨릭 신자로 위장한 크립토-유대교도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실지 모르지만 1492년 (카톨릭으로 개종한 이탈리아계 유대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항해 계획에 돈을 댄 것은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드 국왕이 아니라 랍비를 포함한 유대인 재력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건립이 유대인의 도움이란데 "감격"하는 친-이스라엘적 "근본주의 기독교도"들도 미국에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로욜라는 알함브라 포고령 이전인 1491년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이 1492년 무렵에 강제개종한 유대인, 즉 콘베르소인지는 추정일 뿐입니다. 설령 그 가족이 개종한 유대인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1492년의 강제개종인지, 혹은 그 이전인지 불확실합니다. 그 이전의 개종이라면 그의 집안이 이미 카톨릭화했다고 봐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가 탄생 직후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이미 1491년 당시 그의 가족은 로마카톨릭 신자였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의 가족이 굳이 크립토-유대교도였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이런 류의 주장에서는 강제개종한 유대인들이 모두 크립토-유대교도였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게 보기는 힘듭니다. 수 백년에 걸친 레콩키스타 기간 중 자발적으로 개종한 유대인들도 분명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냥 현실주의자들이었을 테니까요. 이슬람이 7세기 말에 이집트를 정복한 한 세대만에 이집트의 기독교 인구가 반토막 났다는 것을 기억하면 될 것입니다.

이베리아의 두 국가는 이들 1492년의 강제개종자 뿐 아니라 그 이전의 유대인 (콘베르소) 및 무슬림 개종자 (모리스코)들에 대해 늘 의심을 가져왔습니다. 이슬람 세력 (무어인)을 상대로 한 레콩키스타 과정 중 수복지역이 들쭉날쭉했기 때문에, 수복지역민들은 지배세력에 따라 이슬람과 기독교를 오가며 개종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역시 요주의 대상으로 감시되었습니다.

알함브라 포고령은 유대인들에게 개종/추방/처형이라는 옵션을 줬지만, 무슬림 (무어인)에 대해서는 전원 추방을 결정합니다. 이미 이슬람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기독교도들인 모리스코 역시 신앙과 관련없이 가차없이 추방되었습니다. 즉, 종교가 아닌 인종에 따라 인종청소를 한 것입니다. 이걸 스페인에서는 "순혈"주의라 불렀습니다. 어찌보면 이미 수 세대간 기독교도로 살았던 자국의 유대인들 (가령, 루터교회 신자였던 멘델스존 집안)에 대해서도 종교와 무관하게 인종적인 이유로 박해를 가한 나찌의 정책이 당시 스페인/포르투갈의 "순혈정책"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결정은 "종교적"이기도 하지만 "국가안보" 정책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당시 국가가 없었지만,  무슬림들의 경우는 지중해 동부에 오스만 투르크가 절대강국으로 엄연하게 지배하고 있었으니까요. 암튼 그런 이유로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종교재판의 주 표적은 이 유대인 개종자인 콘베르소가 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설령 로욜라 집안이 콘베르소였더라도, 꼭 그 집안이 크립토-유대교도였다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성장기는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서 "순혈주의"가 강화되는 시기였고, 따라서 콘베르소 기독교도들의 입지가 크게 위축된 시점입니다. 그래서 콘베르소 기독교도들이 자신의 "종교적 충성심"을 보여줄 방법으로 예수회와 같은 전투적인 수도회 설립에 적극적이었고, 특별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왕들 보다 종교적으론 수위에 있는 로마의 교황에게 절대복종을 맹세하는 식의 예수회 서약을 강조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할 듯 합니다. 따라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왕들은 예수회를 별로 안좋아했습니다. 국가 안의 국가를 용인하는 것처럼 되는 것이니까요. 동일한 이유로 카톨릭/프로테스탄트 할 것 없이 유럽 제 국가들이 예수회를 자국 내에서 허용하길 꺼렸던 것입니다.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1593년의 예수회 총회에서는 그 부모 세대에서 개종하지 않았다면 유대인/무슬림 개종자의 예수회 가입을 금지시켰습니다. 14년 후의 총회에서는 5대조 까지 기독교도 아니면 예수회에 가입이 원천금지되었습니다. 이 규정은 무슬림 개종자에 대해서는 차츰 완화되었고, 1923년 27차 총회에서는  유대인의 경우 3대조까지로 완화되었습니다. 1946년의 29차 총회에서는 이 규정을 폐지하는 대신 여전히 유대인/무슬림 조상을 둔 경우 경계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럼 예수회가 자신들의 크립토-유대교도 정체를 위장하기 위해서 더욱 반-유대적 입장을 취한 것일까요? 나찌도 크립토-유대교도 정체를 위장하기 위해 수 백만을 (이미 기독교도였던 유대인들을 포함해)  죽인 것일까요?  

물론 (모든 것은 가능하므로) 가능성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음모로까지 풀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광민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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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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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김주옥님의 이메일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앞으로는 이 게시판으로 직접 질문/의견제시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로욜라가 콘베르소(강제 개종자?)인지 크립토 (가짜 개종자)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어쨋건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답]

이런 류의 주장에서는 자료를 사용하실 때 교차검증을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비슷한 책들을 서로 서로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사"를 우선 보시고, 이런 "야사"를 보신 후 다시 "정사"로 재검증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콘베르소가 "아니라면" 로욜라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가 콘베르소인지가 확인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게 확실치 않습니다. 가정으로 결론을 내시면 안됩니다.


로욜라에 이어 예수회의 2대 장군이 된 James Lainez (J.G. 1558-1565)도 유대인이었고, 4대 장군Eberhard Mercurian (J.G. 1573-1580)도 유대인이었습니다.  Francisco Ribera (1537-1591)와 Emanuel Lacunza (1731-1801) 역시 유대인이었습니다. 1593년 제5회 장군 회의에서 정관 개정에 동의하는 27명의 예수회 중에서 25명이 유대인이거나 무어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회에 끌렸고 다수가 참여했습니다.

[답]

예수회의 " Superior General"은 "장군"이라기보다는 "총장"으로 번역하시면 되겠습니다. 미국 보건정책을 총괄하는 각료인 보건국장이 Surgeon General 인 것과 비슷합니다. James Lainez는 Diego Lainez 의 오기인가요?

예수회 초기 총장 4인이 유대인이란 것은 오류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로욜라는 가계도가 분명치 않고 (그는 이슬람에 밀려 산간지역으로 간 기독교 저항세력의 보루 중 하나였던 바스크 출신입니다. 즉,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 밀집지역 출신이란 뜻입니다.), 2대 총장은 로욜라와 파리 유학시절에 교류한 인물로 확실히 유대인 개종자 후손이며, 3대총장은 (교황 가문인) 이탈리아 보르지아 가문 출신의 스페인 사람이었습니다. 4대 총장의 경우, 원래는 로욜라의 가까운 지인이었던 폴랑코가 거명되었는데, 예수회 총장이 계속 "스페인" 사람이란 점,  또한 예수회 내 유대계 "콘베르소"의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걸겠다며 교황청이 압박하여 유대인 혈통을 가진 폴랑코 대신 벨기에 사람인 메르쿠리앙을 4대 총장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는 교황의 친구였고, 스페인 사람도 아니었으며, 유대인 혈통을 의심받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최적의 인물이었습니다. 예수회 창립멥버들은 대개 로욜라와 파리에서 동문수학하고 교류한 사람들입니다. 일종의 향우회 겸 동문회 조직에서 시작된 거죠.


유대교의 카발리즘과 예수회의 신비영성이 매우 닮아서 의아했는데 둘의 관련성을 알게 되어서 놀라고 반가웠구요. 유대인들이 스페인에 살면서 만들었다는 비밀집회 알룸브라도스의 신앙은 유대교의 카발리즘이었다지요. 유대인들이 RC로 강제 개종했든 위장 개종했든 새로 받아들인 종교 안에서 옛 종교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며 혼합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답]

중세 발 카발라의 진앙지는 이슬람 지배 하 스페인의 코르도바와 남프랑스였습니다. 1492년 유대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격 추방되면서 이들이 동진하여 오토만 제국, 특별히 팔레스타인으로 카발라를 전파하고 이게 다시 북상하여 동유럽의 아슈케나지에게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 출신 루리아는 세파르딤 출신입니다.

예전에 이런 글도 하나 썼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blog-post_18.html


예수회의 교리 대다수는 카발라와 바빌로니안 탈무드에서 발견되는 교리와 매우 흡사합니다. 로욜라를 매우 존경했던 아이삭 루리아의 신카발라 또는 루리아닉 카발라는 자연스럽게 예수회로 흘러들었으며 근본 교리가 됩니다.

[답]

대다수 어떤 교리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이삭 루리아가 로욜라를 존경했다는 근거자료는 무엇인가요?


최광민님은 저들과 세계 비밀 엘리트 세력의 관련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고 했는데, 저들을 폭로하는 외부세력 뿐만 아니라 저들의 내부에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흔히 저들 엘리트 세력의 중심에 “유대인”이 있다거나 또는 “예수회”가 있다고 말하곤 해서 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문이었는데 이제 보니 같은 세력이었네요.

[답]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진" 유대인이 "세계장악"이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뭉친 것인지, 아니면 정세에 따라 어쩌다보니 그리된 것인지는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가령, 러시아의 볼세비키나 서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유대인이 많았던 것은, 그들의 선택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유대교와 유대인의 정체성으로 한계가 있다면, 그들은 (1) 기독교로 개종하고 유럽의 주류가 되거나, 혹은 (2) 아예 종교를 완전히 포기하고 유물론 혁명에 동참하는 두가지 큰 선택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크게 바꾸는 건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던 것이죠.



“유대인들이 기독교 문명국가들을 붕괴시키고 장막 뒤에서 일반 혁명을 증식시켜 이스라엘의 지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적으로 프리메이슨 조직을 만들었다. 프리메이슨 조직은 단지 유대인 수중에 들어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 구즈노 데 무쏘, 코뺑 알방셀리
“프리메이슨 조직은 유대인의 제도다. 그것의 역사, 계급, 문장, 암호, 의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의 것이다.” - 아이작 와이즈
“프리메이슨리는 유대교에 기반을 둔다. 메이슨의 의식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 잡지 <쥬이시 트리뷴>
“시오니스트 세계의 리더들, 도처의 프리메이슨 조직에서 영향력있는 사람들은 세계 단일종교와 세계단일정부를 가져올 세계혁명을 위해 결탁하여 노력해 왔다. 많은 메이스닉 랏지들은 유대인들로만 구성된다. 반인종주의연맹을 탄생시킨 브나이 브리스 랏지가 그 한 예가 된다”. - 레이 노보셀
“프리메이슨이라는 엄청난 조직의 진짜 우두머리는 유대주의의 강경 멤버와 고위 카발들과 엄격하고 복잡하게 연합되어 있다. 조직의 엘리트는 이스라엘 카발리스트의 비밀부서에 고용되어 있다.” - 구즈낫 데 모소
“랍비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은 우리 온 역사를 통해 미국의 프리메이슨 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다… 프리메이슨과 유대교의 의식과 상징 그리고 용어에는 많은 공통적 주제와 이상이 발견된다.” – 블로그 <유대교와 프리메이슨리>
“프리메이슨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유대인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변함없이 신성한 지혜의 기준을 간직하고 있다.” - 잡지 <르 심볼리즘>
“프리메이슨리의 상징들과 의식들은 모두 유대 카발라의 오컬트 철학에 기초한다. 프리메이슨의 모든 비밀은 유대 카발라의 덕택이다.” - 앨버트 파이크
“프리메이슨리는 온 세계에 퍼진 비밀 단체들이 겹쳐져 이루어진 몸이다. 이것의 목적은 기독교 원리에 입각한 현재의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며 그 자리에 무신론적 이성주의 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겉모습은 종종 바뀌었지만 이 목적은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이 몸부림의 본질은 영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성주의와 기독교 사상과의 충돌이며, 신인(神人)이 될 인간의 권리와 하나님의 권리와의 충돌이다.” - 비콤테 폰신
“프리메이슨의 계보를 올라가 보자. 모든 조직들을 타고 올라가 가장 정상에 이르러 세계 메이슨들의 우두머리가 누군지 살펴보면, 당신은 예수회의 끔찍한 수장과 프리메이슨들의 우두머리가 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 프리메이슨 대통령의 전기 작가 제임스 파튼. 『검은 교황Black Pope』


[답]

"솔로몬과 히람"이 세운 성전을 자신의 기원으로 주장하는 프리메이슨이 유대교적 상징을 사용하는건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 아닐까요? 유대인 조직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이렇게 일하는 대부분의 조직들, 예를 들어 고대 스코틀랜드파, 성전기사단, 아비그논파, 훼슬러파, 동서 황제들의 그랜드 의회, 국립 왕자 메이슨 등은 사실 거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아들들이다. 조직의 설립자인 바론 훈트, 슈발리에 람세이, 챠우디, 진젠도르프 같은 인물들도 모두 예수회 장군의 명령 하에서 일했다." - 헬레나 블라바츠키. 『베일을 벗은 이시스』

[답]

헬레나 블라바트스키는 유사종교 신지학 교주입니다. 그 본인이 온갖 오컬트를 끌어모은 장본인이고, 또한 이런 류의 음모론을 크게 증폭시켜 서방에 전파한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회가 나중에 반유대주의가 되어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앞장 서서 죽였는지는 의문이네요. 정통 유대교는 신비주의적 카발리즘을 미신처럼 이단시하고 핍박했는데 그래서 정통 유대교를 원수로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답]

나찌가 유대인 인종청소를 주로 했던 지역, 즉, 폴란드를 포함한 동북부유럽 지역은 카발리즘으로 채색된 하시드가 탈무드 중심의 "정통" 유대교와 경합하던 지역입니다.  여기에 간략히 적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blog-post_18.html

따라서 나찌가 "카발라에 채색된 예수회"를 배후에 둔 행동조직이었다면, 카발라가 카발라를 핍박하는 구도가 되어 비일관적이지 않나요?


"Kamikaze Koscki에 의하면, 히틀러와 나치의 부상은 크립토 유대인 조직 예수회의 업적입니다. 일루미나티는 예수회에서 나왔습니다. 일루미나티 설립자는 예수회 사제인 크립토 유대인 아담 바이샤우프트입니다. 예수회 조직 몰타의 기사단 (the Knights Hospitaller, 십자군 후예) 프란츠 폰 파펜이 그의 Zentrum (독일 카톨릭당, German Centre Party)를 통해서 히틀러에게 정치적 틀과 계획을 제공했고, 히틀러를 권력에 올렸습니다." 역시 몰타의 기사단이자 대사업가인 프릿츠 티센은, J.P. 모건의 지원으로 연방 준비 은행의 교황 기사단에 의해 예수회의 통제를 받고 있던 월 스트리트를 통해서 히틀러를 지원하였습니다. 예수회 사제 Stempfle Bernhardt SJ는 뮌헨의 맥주홀 반란으로 악명 높은 쿠데타 시도 실패후 투옥중이던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 집필을 도왔으며, 이 자서전은 나치의 바이블이 되었습니다. 악명높은 친위대 (SS, Shutzstaffel, al. "Strike Force") 설립은 예수회로부터 영감받은 것입니다. 하인리히 히믈러 수하에서 Nazi Counter의 수장이었던 Walter Schellenberg가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Heinz Hohne의 "The Order of the Skull" (해골단)에도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프란츠 폰 파펜은 무솔리니와 바티칸 사이의 라테라노 조약 콘코르다트(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이끌어 냄으로써 바티칸에 외교적 면책을 부여했습니다. 법의 저항 없이 나치 탈출망을 구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크로아티아 독재자이자 Ustasha 수장인 예수회 사제 Ante Pavelic은 히틀러의 친위대를 이용해서 학살을 저질렀으며, 악명높은 바티칸 채널 "Ratline"을 이용하여 나치들을 남아메리카로 빼돌렸습니다. 나치가 안착한 곳이 예수회가 득실한 아르헨티나입니다.

[답]

파펜 수상과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밀어준 것은, 노동당/공산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히틀러를 중간에 끼어넣으면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집권당이 노동당/공산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오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정치공학 꼼수가 바이마르 공화국 자체를 망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중세부터 유행한 기사단이나 비밀결사의 족보는 가려서 보시는게 좋습니다. 근세 이후 이런 조직의 멤버쉽은 일종의 명목상 소셜클럽의 멤버쉽에 가까우며, 돈을 주고 사서 귀족 행세 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몰타 기사단이 왜 예수회 조직이던가요?

일루미나티의 창설자인 바이샤우프트가 어린 시절 예수회 학교를 다닌 점은 인정되지만 그가 예수회 사제였다고 보긴 힘듭니다. 그는 결혼도 했으니까요.


시온주의 창시자 티오도어 허즐(Theodor Herzl)은 원래 아르헨티나에 유대 국가를 세우는 "안디니아 계획(Andinia Plan)"을 세우고 있었으며, 예수회의 은신처가 아르헨티나에 있었습니다.

[답]

당시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던 아르헨티나는 농업개발 때문에 유럽으로부터 대규모 이민사업을 승인했던 때였습니다. 당연히 대규모 인구가 이동하려면 빈 땅이 많고 이민에 우호적인 지역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시오니스트들이 남미를 팔레스타인의 대안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헤르츨은 당시엔 아르헨티나에 유대인 국가건립이 아니라 자치주 건설을 목표했습니다.

나중에 헤르츨과 영국정부가 진지하게 협상하던 지역은 아프리카 우간다였습니다. 일본제국도 시오니스트 운동을 지지해 만주에 유대인 국가를 세워줄 용의가 있다고 제안한 것은 아시나요? (류영모/함석헌의 정신적 스승인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가 이를 지지하기도 했죠) 아마 그랬으면 만주의 조선독립군들이 유대인들하고도 싸웠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치의 학살 과정을 기록한 악명 높은 "Death List"는 예수회 사제 Edmund Walsh에게 위탁된 후 다시는 반환되지 않았습니다. 신경 가스 자이클론-B로 희생자를 처형한 후 장작위에 수많은 시신을 태운 사진도 있습니다. 크립토 유대인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이 되기 전 Karol Wojtyla였을 때, 로스차일드의 IG Farben에서 홀로코스트에 사용된 신경 가스 자이클론-B를 판매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랑키스트입니다. 나치 출신 교황 베네딕트 16세와 Paulus P. P VI 역시 크립토 유대인이었습니다.

[답]

전직 교황 둘이 정말 크립토-유대인일까요? 그럼 아르헨티나 출신이자 예수회원인 현 프란체스코 교황은 거의 확실히 유대인으로 봐야 할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뉘렘베르크의 재판은 예수회 사제들이 기소된 나치들의 통, 번역을 담당하여 많은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다수의 예수회 사제들이 서기관으로 활약했으며, 속기록의 상당 부분이 이들에 의해 왜곡되었습니다.

[답]

이 진술의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스탈린은 그루지야의 예수회 Tiflis Orthodox College에서 교육받았으며, 예수회는 Grand Orient Freemasons Republicans가 스페인에서 축출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코의 스페인 침공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답]

스탈린이 어린 시절 고향 고리에서 다닌 학교는 조지아 (그루지야) 정교회에서 운영하던 학교로 원래 정교회 성직자의 자녀들을 교육하던 곳인데, 스탈린의 어머니는 스탈린이 보제 (집사)의 아들이라고 속여 아들을 입학시켰습니다. (실제로 스탈린의 생부가 따로 있다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이후 스탈린은 아버지가 일하던 티필리스에 가셔 교육 받습니다. 이 학교는 성직자 양성기관이며 "러시아 정교회"가 운영했습니다. 예수회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던 러시아 정교회가 운영하던 학교가 어떻게 "예수회" 학교일 수 있나요.

게다가 스탈린은 후대 유대인 혁명가들과 경합을 벌였고 (그런데 볼세비키도 예수회 산하조직이라면서요?), 또 자국 내 유대인들을 강제이주, 추방, 처형 하는 등 유대인을 대규모 인종청소하기도 했습니다.


무솔리니를 권좌에 올린 것은 예수회 사제 Pietro Tacchi Venturi였습니다. 파시즘도 일루미나티가 만든 것입니다.

[답]

파시즘은 길게 보면 헤겔우파의 왜곡된 결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헤겔좌파는 마르크스주의를 낳았고요. 꼭 일루미나티가 기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종의 시대정신이었던 것이죠.


히틀러가 전장에 보낸 사람들은 독일인보다는 다른 백인들이었으며, 주로 개신교 신자들과 폴란드 슬라브족이었습니다.

[답]

폴란드인들은 대부분 로마카톨릭 신자입니다. 그리고 히틀러를 맹렬히 지지한 독일 남부 주들은 모두 카톨릭 주들입니다. 이들 남부 독일인들은 자원입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역시 나찌를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나찌가 장악한 지역에서 프랑스 말고 인구 수로 독일을 따라갈 나라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병력을 차출했다는 말일까요?

이상입니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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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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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콘베르소가 "아니라면" 로욜라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가 콘베르소인지가 확인되어야만 합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톤의 <Black Terror, White Soldiers>에 의하면, "마라노스(유대인 개종자를 비하해서 부르는 명칭)들은 예수회 뿐만 아니라 카르멜회, 도미니크회, 프란체스코회 등에도 참여하여 다수의 주교와 추기경을 배출했다."
로욜라가 마라노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스페인과 미국의 유대인 개종자(Lo Judeo Conversos en Espana Y America, Jewish Conversos in Spain and America>에 의하면, "로욜라는 통상적인 유대인 개종자 이름이다."
에드워드 헨드리의 <Solving the Mystery of Babylon the Great>에 의하면, "교회의 보호자이자 동시에 파괴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예는 예수회다. 우리가 가장 놓치는 점은, 예수회가 유대인 조직이라는 점이다. 이민족 사제들이 있긴 하지만, 예수회는 유대인들이 설립하였고 다른 유대인 비밀 조직들과 매우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 前영국 수상이었던 벤자민 디스라엘리는 첫번째 예수회 사제들은 유대인이었다고 고백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비서였던 Juan Polanco 역시 유대인으로서 로욜라를 임종한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이들은 신비주의 카발라의 크립토 유대인이었다."

결국 로욜라가 RC로 개종(또는 위장)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콘베르소든 크립토든 "유대인"이라고 호칭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네요.

2. 예수회 내 유대계 "콘베르소"의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걸겠다며 교황청이 압박하여 유대인 혈통을 가진 폴랑코 대신 벨기에 사람인 메르쿠리앙을 4대 총장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예수회 내에 유대인 콘베르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증거네요. 따라서 예수회는 콘베르소 유대인들이 세우고 운영해왔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겠지요.


3. 중세 발 카발라의 진앙지는 이슬람 지배 하 스페인의 코르도바와 남프랑스였습니다. 1492년 유대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격 추방되면서 이들이 동진하여 오토만 제국, 특별히 팔레스타인으로 카발라를 전파하고 이게 다시 북상하여 동유럽의 아슈케나지에게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 출신 루리아는 세파르딤 출신입니다. 

그렇군요. 카발라가  처음부터 있었던 유대교 이단이 아니라 이스라엘 멸망 후에 이리저리 이주해다니며 혼합되어 생겨난 이단 사상이었네요.

4. 대다수 어떤 교리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이삭 루리아가 로욜라를 존경했다는 근거자료는 무엇인가요? 

유대교의 바벨로니안 탈무드와 카발라, 그리고 예수회의 교리는 마법, 점성술, 신지학, 뉴에이지, 영지주의, 모든 신비주의 종교의 뿌리가 되었다고 봅니다. 엘리자베스 딜링은 이것을 사탄주의라고 정의합니다.

Rabbi Isaac Luria(1534-1572), a faithful follower of Ignatius Loyola(1491-1556), formulated the “New Kabbalah” 라고 보았는데 둘이 어떻게 만나고 알게 되었다는 구체적인 글은 안보이네요.

5. 유대교와 유대인의 정체성으로 한계가 있다면, 그들은 (1) 기독교로 개종하고 유럽의 주류가 되거나, 혹은 (2) 아예 종교를 완전히 포기하고 유물론 혁명에 동참하는 두가지 큰 선택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교인은 예수를 저주받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기독교로 개종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은 없어지는거겠지요.
 
유대인은 세상에 모든 상반된 사상들을 만들어서 서로 충돌하게 만들어왔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를 만들어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자들도 유대인이요, 이와 상반된 공산주의를 만들어서 인류 역사에 엄청난 전쟁과 살상을 야기시킨 자들도 유대인입니다. 유대인 예수에 의해서 기독교가 생겨나고, 또 유대인 프리메이슨에 의해서 사탄주의가 생겨나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도 있어 왔습니다. 우(자본주의)로 가도 유대인, 좌(공산주의)로 가도 유대인, 위(예수)로 가도 유대인, 아래(사탄주의)로 가도 유대인이 있다는 말은 그들의 엄청난 파워를 잘 설명합니다.

조지 피트 리버스는 저서 <러시아 혁명의 세계사적 의미 The World Significance of the Russian Revolution> 서문에 유대인 오스카 레비 Oscar Levy의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유대적 요소들은 현 세상의 정신적 물질적 파탄을 이끌어 낼 목적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쪽 모두에 걸쳐 강한 추동력을 제공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의 강렬한 이상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함이다."


6. 헬레나 블라바트스키는 유사종교 신지학 교주입니다. 그 본인이 온갖 오컬트를 끌어모은 장본인이고, 또한 이런 류의 음모론을 크게 증폭시켜 서방에 전파한 장본인입니다. 

그녀와 같은 오컬트 세력의 리더들이 자신의 조직들과 사탄적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지요. 자신의 조직을 설명해주는 이런 내부자들과 이런 조직을 폭로하는 외부자들이 한결같이 "세계비밀 엘리트 조직"의 실체와 목적과 성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집단은 단지 음모론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나 과장이라는 주장은, 무수하게 많은 증거들을 모두 무시해버리겠다는 결정으로 오히려 비상식적입니다.    

7. 나찌가 "카발라에 채색된 예수회"를 배후에 둔 행동조직이었다면, 카발라가 카발라를 핍박하는 구도가 되어 비일관적이지 않나요?

나찌가 카발라 유대교에 채색된 예수회를 배후에 둔 행동조직이 맞겠지만, 그가 죽였던 유대인들은 카발라 유대인이 아니라 정통 유대인, 힘없고 가난한 유대인, 세파르딤 유대인이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정작 힘있는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핍박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어떤 목적으로 세파르딤 유대인들을 죽음에 내어주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희생자였다고 큰 목소리로 주장하면서 세상의 동정을 받고 목적한 바대로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우선 여기까지)
*최광민님의 글인 첫 줄을 빨간 색이나 고딕으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요... 그렇게 바꿔주시면 남들이 읽는데 더 편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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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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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견 감사합니다. 혹시 인용하신 글들의 저자 약력 등을 함께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2]

"....스페인과 미국의 유대인 개종자(Lo Judeo Conversos en Espana Y America, Jewish Conversos in Spain and America에 의하면, "로욜라는 통상적인 유대인 개종자 이름이다." 라고 하셨는데, 근거자료를 한번 찾아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 "로욜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가 태어난 동네 이름입니다. 즉, "출신지"이지 통상적인 성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란 "로욜라 출신 of Loyola 이그나티우스" 로 새기셔야 합니다. 스페인어로는 Ignacio de Loyola 라서 더 분명합니다.

현지 바스크어론 Loiola 입니다.

https://www.google.com/maps/@43.1739535,-2.2797111,13.75z

혹시 "유대인들이 로욜라를 우호적으로 보기 때문에 개종시 로욜라를 영세명으로 삼는다"는 취지로 하신 말인가요? (그런데 그 경우는 Ignatius를 영세명으로 취하지 않나요?)


[3]

"예수회 내 유대계 "콘베르소"의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걸겠다며 교황청이 압박하여 유대인 혈통을 가진 폴랑코 대신 벨기에 사람인 메르쿠리앙을 4대 총장으로 선출했습니다."라는 말 앞의 "예수회 총장이 계속 스페인 사람"이란 지적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콘베르소의 예수회 가입에 제공을 건 1593년 총회까지, 그러니까 예수회 창설 첫 30년은 로욜라와 함께 파리 유학시절에 예수회를 시작한 그의 여섯 친구들이 예수회를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에 4명은 Francis Xavier, Alfonso Salmeron, Diego Laynez,  Nicholas Bobadilla 은 모두 스페인 사람이며 이 가운데 Diego Laynez만 확실히 유대인 혈통을 가진 콘베르소입니다.  나머지 두 명인 Peter Faber 는 사보이 사람이며, Simão Rodrigues 는 포르투갈 사람입니다.

Nicholas Bobadilla이 가장 오래 살았는데 그가 죽은 1590년으로부터 3년 후 유대인 기독교도의 예수회 가입에 대한 제재령이 발효됩니다. 즉, 창립멤버 7일이 모두 사망한 후 조치가 취해진 것이죠. 스페인의 순혈정책은 16세기 초부터 계속 고조되어갔습니다. 그리고 1593년의 금지령 직전에도 스페인 곳곳에서 콘베르소에 대한 각종 제재조치를 취했습니다. 반-콘베르소 측의 쿠데타였던 걸까요? 아니면 콘베르소나 혹은 크립토-유대인들의 자작 쿠데타였던 걸까요?


색을 넣으실 때는 html 코드를 직접 수정하셔야 합니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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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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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ply to this post by choin
최광민님, 제 글을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


스페인에서 1491년 태어난 로욜라는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교인이었다. 당시 스페인에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고 있었는데 1492년의 종교정책을 따라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아니면 추방이나 학살당해야 했다. 로욜라 혹은 그의 부모의 개종은 자의적 개종이었는지, 혹은 학살이나 추방을 피하기 위한 강제 개종이었는지, 혹은 위장 개종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유대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자들 가운데 크립토 유대인(위장 개종자)들이 있었는데 유대교인으로서의 정체를 감추고 가톨릭으로 위장한 사람들이었다.

로욜라가 1540년 가톨릭 안에 설립한 예수회는 초기에 친유대주의였다. 가톨릭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반면에 유대교는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믿으므로 둘은 화합할 수 없는 관계였음에도 둘이 우호적이었다면, 로욜라는 크립토 유대인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보스턴 대학의 로버트 마릭 교수는 예수회 역사의 전문가로서 예수회와 유대인의 관련성을 연구하며 <The Jesuit Order as a Synagogue of Jews>을 저술했다. 이것은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교인이 처음에는 예수회 안에서 지배세력이었다가 40년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에 어떻게  배척받는 자리에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에 의하면, 로욜라가 죽은 이후 친유대주의 예수회는 반유대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예수회는 순혈주의를 내세우며 유대인 개종자뿐만 아니라 아시안과 아프리칸 개종자 등 ‘뉴크리스챤’의 가입을 금지했는데, 진짜 목적은 가톨릭 안에 유대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예수회 4번째 총장을 선출하는데 유대계 스페인인 폴랑코가 유력했지만 비유대계 벨기에인 매르쿠리앙이 선출된 것은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는 예수회 총장이 되면서 로마 안에서 유대인 개종자들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했다.

예수회가 교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서 가톨릭 안에서 중심적 위치에 있다가 후에 배척받는 위치가 된 데에는 저들의 잔인하고 파괴적이며 전쟁을 일삼는 반기독교적 행위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톨릭은 선교단체인 예수회의 행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각국에서 철수를 명하기도 했다. 역사가들은 예수회를 파괴적이고 이중적인 집단으로 평가하는데 이들이 자신을 ‘기독교’라고 자칭하는 것에 대해서 미스테리라고 말한다. 실제로 예수회는 가톨릭의 비성경적 교리를 비난하고 개혁을 주장했던 개신교를 최고의 원수로 여기며 멸절을 목표로 세워진 집단이기도 하다.

예수회가 반기독교인 것처럼 유대교도 반기독교다. 유대교가 반기독교인 이유는, 예수를 가짜 메시야로 믿기 때문이며 또한 기독교(정확한 표현은 로마가톨릭)에 의해서 오랜 세월 동안 크게 핍박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교인이 기독교(개신교) 멸절을 목표로 기독교(로마가톨릭교)의 이름을 달고 예수회를 세운 것이 아닐까?

유대인들은 스페인으로 이주해 살면서 비밀집단인 알룸브라도스를 만들었다. 자신의 유대교 신앙을 잊지 않기 위해서 비밀리에 유대교 의식을 행했는데 그들의 신앙은 유대교에서 이단시하는 카발리즘이었다. 예수회의 극단적 신비주의 영성이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리즘과 아주 흡사한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어서 세계비밀 엘리트 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말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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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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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가지 추가


정리 감사합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진술에서의 문제점을 먼저 해결하시고, 그 후에 다음 주장을 연결시키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밤에 시간을 내서 몇가지를 더 지적해 볼까 합니다.

특별히 선생님께서 "크립토-유대교도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로 설명하신 스페인의 알룸브라도스의 진짜 기원과 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시대배경이 어떻게 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2] "콘베르소" 로욜라?


로욜라가 굳이 "콘베르소"이어야만 선생님의 주장이 연결된다고 보시나요? 이미 로욜라와 예수회를 창립한 6인 가운에 한 명만 "유대계 콘베르소"라고 말씀드렸는데, 계속 "로욜라는 유대계"라는 미확인 "가정"을 "사실"로 확정하시고 논증을 펼치실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로욜라가 1540년 가톨릭 안에 설립한 예수회는 초기에 친유대주의였다. 가톨릭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반면에 유대교는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믿으므로 둘은 화합할 수 없는 관계였음에도 둘이 우호적이었다면, 로욜라는 크립토 유대인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라고 적으셨는데, 로욜라가 품은 유대인은 "콘베르소", 즉 실제로든 명목적이든 이미 개종한 유대인들입니다. 따라서 화합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유대교도"를 구분해서 사용하시는게 좋겠습니다.


[3] 알룸브라도의 기원과 교리


"허수아비 논증"에 빠지지 않으려면 "알룸브라도"의 정체를 정확히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1) 로욜라와 예수회 창립멤버들이 콘베르소이며 (2) 크립토-유대인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알룸브라도"가 그 배후에 있다는 진술이 선생님 주장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16세기 스페인의 종교재판에 대해 제가 주말에 읽은 세가지 책과 논문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다소 지루할 수 있으니 코미디언 멜 브룩스의 영화 한 편 보시고요.

https://youtu.be/LnF1OtP2Svk

(참고로 멜 브룩스는 유대인입니다.)


- 로버트 마릭스 교수의 책 {The Jesuit Order as a Synagogue of Jews} 제 1-2장
http://www.jstor.org/stable/10.1163/j.ctt1w8h1xm

- 헨리 찰스, {A History of the Inquisition of Spain} 제 4부 8권 5장
https://libro.uca.edu/lea4/8lea5.pdf

- 논문 {EL SABOR DE HEREJIA: THE EDICT OF 1525, THE ALUMBRADOS AND THE INQUISITORS’ USAGE OF LOCURA}

-- Frances Luttikhuizen, {Underground Protestantism in Sixteenth Century Spain}


16세기 스페인 종교재판 (The Spanish Inquisition)의 목표는 사실은 모든 종류의 이단박멸이지만, 이베리아 반도는 종교개혁의 직접적 영향권에서 비껴나 있었기 때문에 주로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 개종자 가운데 명목상으로만 개종한, 특별히 은밀히 유대교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소위 크립토-유대교도들이 주 대상이 됩니다.

1520년대 초반에 스페인에서 "알룸브라도 Alumbrado (개명한 자, 혹은 빛을 받은 자)"란 이름의 그룹이 종교재판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 이름에서 "일루미나티"를 연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런데 막상 당시 기록에 보면, 알룸브라도의 사상적 기원은 스페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유입되어 1520년대 초반에 스페인에서 널리 퍼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페인의 크립토-유대인들이 비밀결사체인 알룸브라도를 만든게 아니며, 사실은 비밀결사라고 하기에도 무리입니다.

1525년의 톨레도의 포고령에 따른 48개 기소내용을 정리하면 아마 아시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의 알룸브라도스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기소된 내용 중 몇가지만 추린다면,

(1) 로마카톨릭 교회의 성사적 권위 무시
(2) 교회의 중재가 아닌 성령을 통한 신과의 직접 합일과 신비체험 강조
(3) 다양한 입신 (=엑스타시) 강조
(4) 특별히 예언자적 지위의 "여성"들이 이끈 지도부
(5) 경제/종교/정치계의 영향력있는 인사들의 지원을 받는 평신도 조직
(7) 에라스무스주의 혹은 루터주의 의혹

으로 대략 정리됩니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스페인 교회 당국에 실망한 유대계 콘베르소들과 여성들이 이 운동에 많이 가세한 것을 두고 굳이 "비밀결사"로 풀이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1525년 톨레도 포고령과 관련되어 기소된 알룸브라도스 지도인사들은 지도자인 이자벨과 그녀의 추종자들인 마리아 데 카잘라, 프란체스카 두 명의 여성과 페드로 루지즈 데 알카라즈 가운데 오직 알카라즈만 "크립토-유대교도"란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종교재판관은 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최초에는 이 네명이 모두 콘베르소라고 주장되었으나, 이후 기록에 보면 이 점이 분명치 않으며, 또 설령 이들이 콘베르소였더라도 이 신분문제가 기소의 핵심으로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알룸브라도" 운동은 유대교 카발라라기 보다는 14세기 말부터 유럽을 강타한 다양한 개인적 기독교 신비주의에 더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중세 말,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예전에 제가 짦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3/14.html

특별히 로마카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인정하지 않는 등 성사제도에 대한 비판에선 16세기 초반의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와 루터의 종교개혁의 모토와 상당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으며, 사실 당시 이단의혹으로 기소되어 조사받은 주도급 인물 중에는 에라스무스주의자와 루터주의자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알룸브라도는 상당히 복합적인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은 인사들은 로마카톨릭의 외형적인 성사들을 "새로운 유대교"라며 맹비난 하기도 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제도종교의 성사이행이 아닌 종교의 영성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또 수도원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수도원이 많았던 스페인에서는 이런 주장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1530년 경엔 스페인의 교회는 에라스무스주의를 일종의 펠라기우스주의로 비판하게 되었고, 또 동일한 기소내용을 알룸브라도 운동에 덧씌웁니다.

신비주의 면에서는 중세 말 대체적으로 반교황파를 구성했던, 그리고 입신 (엑스타시) 등의 신비체험을 강조되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소형제회의 수도사들, 특히 대중들에게 성인으로 추앙되는 인물들 몇몇이 알룸브라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고, 성사가 아닌 내면으로 침잠하는 묵상을 통한 신 체험을 강조했습니다. 정적주의 (dejamiento)와 관련해서는 당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행방법을 모방/발전시킨 자아성찰과 지속적 묵상법이 논란이 되었는데, 눈을 감거나 기도를 하거나 하는 방식의 묵상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의식을 신에게 집중시켜 신과 일체를 꾀하고 자연스럽게 악을 물리치는 수행법을 취합니다.  (이는 나중에 확실히 로욜라의 관상기도 수행법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알룸브라도 추종자들은 루터 처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란 주장까지는 나가지 않았지만, 인간의 행위는 모두 악하며 다만 교회의 제도적 성사가 아닌 각자의 체험에 따라 신과 일치되면 그 결과 그의 죄성을 가진 자유의지는 신 안에서 소멸되고 오직 신의 뜻에 따라서만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되므로 죄를 더이상 짓지 않는 것이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유는 사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1년 전에 편찬했던 저자 미상의 독일 신비주의자의 글인 {독일신학}의 내용과 거의 같은 궤적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신비주의는 이미 14세기 유럽 각처에서 등장해 종교개혁의 모판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개인영성을 강조하는 이런 기독교 신비주의는 카발라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아래와 같은 글을 하나 적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인용한 독일신학 제 28장을 한번 음미해 보기기 바랍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2/02/theologia-germanica.html

평신도들인 알룸브라도 지도자들이 직접 성서를 해석하고 일부는 성사가 아닌 믿음에 의한 구원을 내세우는 등 당시 조사관들이 알룸브라도 운동이 당시의 루터의 종교개혁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이 느슨한 조직은 비밀결사체가 아니라 공공연하게 활동했고 스페인의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의 암묵적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조직을 "크립토-유대교도의 비밀결사"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이런 주장은 당대의 기록과 정황을 고려하지 않는 도약으로 여겨집니다.  실제로도 당시의 조사기록에 보면 이들을 카발라와 연관짓는게 아니라 에라스무스주의, 정적주의, 루터주의와 연결짓는 내용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로욜라가 알룸브라도 운동과 공식으로 접촉한 때는 그가 종교에 귀의하고 서른 중반의 나이로 살라망카 대학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는 네 명의 알룸브라도 추종자와 같이 살았고, 당시 평신도로서 노방설교도 했는데 그때 알룸브라도로 여겨지는 한 여성이 그 앞에서 입신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그는 조사를 받고 잠깐 투옥되기도 했지만 (곧 훈방조치 되었습니다), 당시엔 알룸브라도에 대한 징계는 그리 매섭지 않았습니다. 이후 로욜라는 파리 대학으로 가서 석사공부를 계속합니다.

예수회는 전통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기반하지만 또 신비주의와 에라스무스적 인문주의도 함께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도미니코 수도회는 예수회를 신-펠라기우스적 에라스무스주의라면서 공공연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4] 17-18세기에 예수회가 유럽에서 금지된 이유


"....예수회가 교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서 가톨릭 안에서 중심적 위치에 있다가 후에 배척받는 위치가 된 데에는 저들의 잔인하고 파괴적이며 전쟁을 일삼는 반기독교적 행위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톨릭은 선교단체인 예수회의 행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각국에서 철수를 명하기도 했다...."

라고 적으셨지만, 사실 이 부분은 실제 역사와 꽤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회는 16세기를 거치면서 국제조직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 조직은 로마의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조직이긴 하지만, 바티칸은 예수회에 폭넓은 특권과 자율권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예수회는 이런 국제화된 조직망을 이용해 프로테스탄트 국가 (가령, 영국) 뿐 아니라 카톨릭 국가의 정세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개입했습니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의 교황은 사실상의 군주로서 국제정치에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고, 따라서 근대국가 체계를 굳히며 군주 중심의 중앙집권을 도모하던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과도 국제적 이권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었습니다. 교황은 교황령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또 군주들 간의 이권에도 개입했는데, 세계식민사업을 둘러싸고 해양강국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세계영토할양안 같은 사안에도 개입합니다. 가령, 당시 예수회는 남미에 준-자치적인 원주민 선교본부를 세웠는데, 교황은 예수회의 선교본부가 있던 지역을 포르투갈에 넘겨주는 걸로 중재하고 선교본부를 해산시킵니다. 즉, 예수회는 교황에게서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이것에 영화 {미션}의 주제죠. 이런 식으로 예수회와 교황 간의 관계는 복잡미묘했습니다. 교황청은 중국, 인도, 남미 등지에서 현지화된 선교전략을 시도하던 예수회의 선교전략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또 한번 갈등국면에 접어듭니다.

절대왕정을 이룬 카톨릭 국가의 군주들은 로마에 충성을 바치는 거대조직인 예수회가 자국 내에 버젓이 활동하는게 아주 불편했습니다. 아울러 예수회는 국제조직을 활용해 다양한 무역사업에도 뛰어들었는데, 이것이 당시 해양강국인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등과 마찰을 빚고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카톨릭 절대왕정 국가 내에서 예수회의 활동의 금지되고 추방됩니다. 상황이 이리되자 안그래도 예수회와 갈등국면에 들어선 교황청도 예수회 승인을 철회하고 해산령을 내립니다. 예수회 활동이 중단되고 재산이 몰수됩니다. 예수회가 다시 부활된 때는, 일단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절대왕정 국가들이 몰락하고, 이후 나폴레옹의 실각 후 재등장한 구-귀족세력과 교황청과의 관계가 완화된 시기였습니다. 아울러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후 구-귀족들이 몰락한 새로운 정치구도 속에서 유럽의 새 정치권과 바티칸의 역학구조 재조정을 위한 예수회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로마의 교황청은 예수회를 복권시켰습니다.

예수회의 활동이 유럽의 카톨릭 국가들 내에서 억압받던 시절에도 예수회의 활동의 보장된 지역은, 아이러니하게도 루터파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프러시아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였습니다. 교황의 간섭이 최소화된 지역이었으니까요.


야사가 아닌 정사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요?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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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In reply to this post by choin

(1) 로욜라가 굳이 "콘베르소"이어야만 선생님의 주장이 연결된다고 보시나요? 이미 로욜라와 예수회를 창립한 6인 가운에 한 명만 "유대계 콘베르소"라고 말씀드렸는데, 계속 "로욜라는 유대계"라는 미확인 "가정"을 "사실"로 확정하시고 논증을 펼치실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릭 교수의 책 < The Jesuit Order as a Synagogue of Jews >은 예수회와 유대교가 한 몸인 것 같은 긴밀한 관계를 말합니다. 최광민님은 예수회를 창립한 6명 가운데 오직 1명만 유대계였다고 주장한다면 두 집단은 관련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네요.

예수회를 창시한 로욜라가 유대계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면으로 유대계라고 추측하는 거지요. 거듭 말하지만 가톨릭과 유대교는 신앙적으로 절대로 합의할 수 없습니다. 한쪽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고 한쪽은 예수를 저주받은 자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가톨릭인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는 친유대주의였습니다. 또한 예수회의 신비주의 신앙은 유대교 카발리즘과도 매우 흡사하지요. ‘로욜라 출신의’ 라는 그의 이름도 개종한 유대인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예수회는 유대사상을 몰래 감추고 가톨릭으로 가장하는 크립토 유대인의 집단으로 보는 겁니다. 미국 이민자의 경우에도 이름이나 문화나 음식을 보면서 한국계로 추정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설령 로욜라가 유대인이 아니었다고 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회가 유대교에 뿌리를 두거나 유대교의 신앙을 모방/흡수했다는 사실이 중요한거지요. 예수회(가톨릭)나 유대교는 신앙상 서로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개신교)를 가장 원수로 여긴다는 점에서 일치성을 보입니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예수회가 유대인 조직으로서 가톨릭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를 처형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역사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학처럼 답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고 어떤 사건의 원인이나 목적 등을 추측으로 말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건이라는 팩트들을 보면서 그것의 원인이나 목적을 이리저리 추정하지만,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역사가들이 서로 달리 파악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들도 많지요.  

(2) 알룸브라도의 사상적 기원은 스페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유입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페인의 크립토-유대인들이 비밀결사체인 알룸브라도를 만든게 아닙니다.

알룸브라도의 카발리즘적 사상의 기원이 이탈리아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유대교는 여러 지역과 문화를 거치면서 카발리즘이라는 이단을 만들었습니다. 알룸브라도의 사상적 기원이 이탈리아에 있다고 해도 그것이 스페인의 유대인들에게도 전해졌겠지요. 그들은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자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알룸브라도를 만들어서 함께 카발리즘의 의식을 행했던 거구요. 유대인이라는 정체가 가톨릭국가에서는 불리한 것이므로 비밀조직이어야 했던 것은 당연했겠지요. 특히 엑스타시나 예언 같은 신비체험을 주장하는 신앙은 대부분 비밀조직으로 존재해왔지요.

(3) 알룸브라도스는 1) 로마카톨릭 교회의 성사적 권위 무시 2) 교회의 중재가 아닌 성령을 통한 신과의 직접 합일과 신비체험 강조 3) 다양한 입신 (=엑스타시) 및 특별히 예언자적 지위의 "여성"들에 의한 지도력 4) 경제/종교/정치계의 영향력있는 인사들의 지원을 받는 평신도 조직 5) 루터주의 의혹 등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오직 알카라즈만 "크립토-유대교도"란 혐의를 받았습니다.

알룸브라도스의 이런 사상이 예수회나 유대교 카발리즘과 흡사하지요. 최광민님이 적극 주장하는대로 예수회원들이 혈통적 크립토 유대인이 아니었다고 해도, 저들이 유대교 카발리즘의 사상을 카피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4) 알룸브라도 운동은 유대교 카발라라기 보다는 14세기 말부터 유럽을 강타한 다양한 개인적 기독교 신비주의에 더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가톨릭이겠지요. 14세기에 활발했다면 전통적 기독교가 아니라 변형된 기독교인 가톨릭을 말할겁니다. 또 개신교 신비주의의 뿌리도 바로 오랜 역사의 유대교 카발라라고 알려집니다. 무슨 사상이든지 혼자서 독창적으로 생겨나지는 않겠지요. 이런저런 사상들이 혼합되고 변조되면서 조금씩 다르면서 흡사한 것들을 만들어냅니다.

(5) 이 느슨한 조직은 비밀결사체가 아니라 공공연하게 활동했고 스페인의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의 암묵적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알룸브라도의 이름은 공개적으로 알려졌어도 실제로 중심적인 활동은 비밀리에 했을 것입니다. 모든 신비종교 집단들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도 공개적으로 있고 자신의 활동도 공개하지만 그것은 세상에 자신을 보이기 위한 것일 뿐 내부에서는 매우 위험하고 치명적인 계획을 갖고 활동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프리메이슨이 겉으로 보여주는대로만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음모론이라고 비난하지만, 수많은 고위급 내부자들이 자신의 조직을 자랑스레, 또는 폭로하는 식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6) 평신도들인 알룸브라도 지도자들이 직접 성서를 해석하고 일부는 성사가 아닌 믿음에 의한 구원을 내세우는 등 당시 조사관들이 알룸브라도 운동이 당시의 루터의 종교개혁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알룸브라도와 루터의 사상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두둔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네요.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보는 통일교나 몰몬교나 가톨릭 등에서도 기독교와 겹치는 부분이 안겹치는 부분보다 훨씬 더 많을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다 그게 그건데 왜 이단이라고 하느냐고 미워합니다.

(7) 예수회가 유럽에서 금지된 이유는…. 절대왕정을 이룬 카톨릭 국가의 군주들은 로마에 충성을 바치는 거대조직인 예수회가 자국 내에 버젓이 활동하는게 아주 불편했습니다.
   
바티칸의 교황에게 충성을 바치기 위해서 무슨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예수회는 각국에서 경제적 피해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파괴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으면서 많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역사적 주요 인물들이 예수회에 대해서 하는 평가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 국가들에서조차 저들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추방했다지요. 심지어는 바티칸 내부에서도 예수회에 대한 찬반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쨋건 제가 말하려는 요지는, 예수회와 유대교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는 겁니다. 마릭교수가 예수회를 유대교의 회당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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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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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릭 교수의 책 < The Jesuit Order as a Synagogue of Jews >은 예수회와 유대교가 한 몸..."이라고 쓰셨지만, 마릭스 교수의 책은 예수회가 "유대교"와 교리적으로 긴밀했다는 주장을 하는게 아닙니다. "개종한 유대인" 즉, 콘베르소와 긴밀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며, 제목을 일부러 자극적으로 뽑은 것이죠. 물론 초기 예수회가 "유대계"를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 유대인들이 상대적으로 예수회에 우호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유대인"과 "유대교(도)"를 구분해서 써주시면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회 초기 회원 가운데는 유대인 개종자들인 콘베르소들이 많았다"라는 사실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이들이 (그냥 혈통적 유대인 콘베르소 뿐 아니라 , 더 나아가) "크립토-유대교도"였다"란 주장이 무리라는 점만 지적할 뿐입니다.


[2]

"‘로욜라 출신의’ 라는 그의 이름도 개종한 유대인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란 진술의 출처를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위에 언급하신 David Livingstone은 조사해 보니 1991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인물로, 주로 기독교가 유대교에 의해 타락했다 -- 따라서 이슬람이 보다 .....라는 취지의 저술을 내고 있더군요.)


[3]

"알룸브라도스의 이런 사상이 예수회나 유대교 카발리즘과 흡사하지요"라고 하셨는데, 카발라의 정확히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지 예를 몇가지만 지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비주의는 광범위하게 보면 서로 비슷한 측면들이 많으니까요.


[4]

"개신교 신비주의의 뿌리도 바로 오랜 역사의 유대교 카발라라고 알려집니다"라고 하셨지만 이 부분은 확정적이지 않습니다. 사실은 카발라도 중세 내내 계속해서 기독교와 교류하며 변해왔습니다.


[5]

"알룸브라도와 루터의 사상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두둔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네요"라고 하셨는데,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당시 스페인 이단재판소 조사관들의 조사 내용입니다. 당시 조사관들은 알룸브라도의 주장이 "루터의 유령"이란 식으로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단재판소야 뭐든 카톨릭 입장에서 이단스러운 건 루터와 연관지으려고 했긴하겠죠).

당시 알룸브라도 운동은 공개적으로 활동한 다소 대중적인 운동이었습니다. 프리메이슨처럼 은밀한 상위조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엑스타시 등을 강조했으므로 인너서클이 형성되어 있긴 했겠죠. 당시 조사에서 알룸브라도스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되는데, (1) recogidos (신비가) (2) visionarios (환상가) (3) 그리고 deixados (책/성서 읽는 자)입니다. 1525년 톨레도 포고령에 따른 이단조사관들은 이 세 부류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 부류인 deixados를 가장 위험하게 보았는데, 이 뜻은 "성서를 읽는 자"란 뜻으로 이들이 평신도로서 성서를 직접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루터 동조자로 혐의를 두었습니다. 이 셋은 정확히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전 알룸브라도스를 두둔하는게 아니라, 그 운동 역시 당시의 시대사조를 따라가고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시는 로마카톨릭 성직자단에 대한 불신이 전 유럽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으니까요.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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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In reply to this post by choin
최광민님의 깐깐한 반박 글을 읽으면서 많이 도전받고 공부하고 수정하며 제 견해를 다듬어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더 발전된 내용이 있으면 차후에 더 나누기로 하고, 우선은 대략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젠 유대인과 예수회가 주도하는, 흔히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로 대변되는, 세계비밀 엘리트 집단에 대해서 전개해가려고 합니다.
제가 저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저들이 기독교를 대적하는 세력이면서 또한 세계를 움직이는 세력이기 때문이지요. 저들에 의해서 기독교가 속아서 왜곡되기도 했고 크게 비난받아왔습니다. 기독교가 저들의 정체와 목적과 활동 등을 알게 될 때 바르게 준비하며 경계할 수 있기를 바람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런 정보들이 소위 찌라시에 의한 과장이나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가지 일치하는 자료들을 보면서 거부할 수 없게 되었지요. 동일 자료들의 카피가 아니라 각각 다른 입장과 관점에서 쓴 글들인데 서로 연결되며 합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관련 글을 올릴 때 잘못된 정보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세요.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언제라도 수정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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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Administrator
옙, 알겠습니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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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In reply to this post by choin
토라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모세오경을 기록했다. 토라라고 불리우는 모세오경에는 창조 이야기를 시작으로 출애굽과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의 유대인 역사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을 비롯해 유대민족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율법(365개의 ‘하지 마라’와 248개의 ‘하라’로 총 613개)이 있다.

구약성경에는 모세오경을 포함해서 역사서와 시가서와 예언서 등 39권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모세오경과 모세오경의 보조경전으로서의 19권을 포함한 24권만 인정하며 이것을 넓은 의미의 토라라고도 부른다.

탈무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모세오경의 내용 이외에 더 많은 것을 말씀하셨다고 믿는다.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셨다고 한다. 율법은 성문화되어 토라에 기록되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방법은 너무 방대한 분량이라서 미처 글로 쓰이지 못했고, 또 성문화된 글은 왜곡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입에서 입으로 비밀스럽게 구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구전율법은 오랜 동안 후대로 전해오다가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왔을 때부터 책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Encyclopedia Judaica>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오늘날의 유대교와 구약 시대의 유대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기원전 6세기, 느부갓네살 왕의 유다왕국 정복과 뒤따른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수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생활에 대한 유례가 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솔로몬왕의 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종교는 제물예식과 다양한 의식 등, 예루살렘에 세워진 웅장한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므로 이제 머나먼 이방인의 땅에 거하게 된 유대인들에게 전통적인 신앙과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속에서 모세의 율법을 유대인들이 따를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통적인 율법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 필요해졌고 이 작업은 서기관들(scribes) 또는 소페림(soferim)이라 불리운 비종교적 학자 집단에 의해 수행되었다.”

구전율법의 체계적 분류와 기록작업은 후대에까지 이어져서 AD 2세기말 유다 하나시에 의해  ‘미슈나’가 완성되는데 이것이 탈무드의 전신이 된다. AD 500년경에야 율법인 ‘미슈나’와 율법에 대한 토론적 교설인 ‘게마라’로 구성된 탈무드가 완성된다. 팔레스타인(4세기 완성)과 바벨론(6세기 완성) 탈무드가 있는데 이중 바벨론 탈무드가 더 권위 있는 해석으로 일컬어진다.

탈무드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침과 민족적 동질성을 지켜주기 위해 천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해 구전으로 전해지던 율법과 해설을 덧붙여 집대성한 탈무드는 지혜서의 일종으로서 유대 교육의 중심서, 유대인의 지식의 집합체로 불리운다.

최초의 영어판인 손치노 본이 1934-48년에나 나왔을 정도로 탈무드는 이방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책이다. 현재 번역되어 시중에 나와있는 탈무드에는 유대인의 삶과 생각을 규율하는 율법 자체가 없고, 유명한 랍비 이야기나 흔히 알려진 일화나 우화 같은 것들로서 일종의 우화집이다. 이것을 300페이지 책으로 편찬할 경우 140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우리에게 알려진 내용은 탈무드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교의 탈무드는 지금도 다양한 해석이 계속 추가되고 꾸준히 확장되면서 그 본질이 되는 토라는 오히려 잠식된 상태다. 반면 36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은 토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성경은 바보들, 여성들, 어린아이들에게나 어울리는 단순한 이야기 더미일 뿐이지만, 탈무드는  유대인 남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현자들’에게만 비밀로 전해지는 비서로서,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는 성경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바리새 서기관들의 가르침 (탈무드)을 지키는 것이 성경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엄중해야 한다 ... 성경의 율법은 범할 수 있다" (Sanhedrin 88b).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별도로 구전 율법을 주셨다는 주장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그것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출애굽기 34:27)

토라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는 이론은 ‘교묘하게 꾸며 낸’ 방법을 사용해 성경을 해석하는 카발라(유대교 신비주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세는 토라의 메시지가 암호로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신명기 30:11-14).

성경이 모든 인류에게 열려있는 반면에,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열려있다며 비밀리에 구전되고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탈무드의 가르침에는 토라와 충돌되는 내용이 많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태복음 15:6)고 비난하셨다.

바리새인의 유대교
구약성경의 종교는 성막과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과 제사'의 종교였지만 지금의 유대교는 '성전 없는 율법주의'의 종교다. 또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신약시대의 유대교도 지금의 유대교와는 많이 다르다. 당시의 유대교에는 사두개파(성전 중심), 바리새파(율법 중심), 에세네파(경건강조), 열심당(로마에 항거)이 있었고, 나자렛 예수를 메시아로 따르던 나자렛파(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초기 기독교인들)가 있었다. 각 분파 별로 자신들의 신념을 지켰지만 구약 종교가 그랬던 것처럼 모세에게 준 '율법과 제사'를 준행하지 않았고 또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아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예수가 메시야로 오셨을 때는 ‘이단’으로 죽이기까지 했다.

메시야 예수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을 무렵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는 유대 사회의 관습, 윤리, 사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예수는 바리새 율법학자들이 인위적으로 지어낸 구전율법을 무지한 민중에 강요하며 하나님이 내린 계율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고 개탄하셨다. 그리고 이들 율법학자 집단의 위선과 교만과 불의를 강하게 비판하셨다. (마태복음 23:13-33, 누가복음 12:1, 요한복음 8:44 등)

AD 70년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면서 유대인들은 세상으로 흩어졌고 유대교는 바리새파에 의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Encyclopedia Judaica>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 예루살렘 함락으로 인하여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되자 사두개파는 그 명맥이 끊어졌고 유대민족의 만사를 조정 통제하는 역할은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의 손에 놓이게 되었다... 그후로 유대교의 역사는 바리새파의 시각에서 새로이 구축되었다... 바리새주의는 유대교의 성격을 부여했고 후세 모든 유대인들의 관습과 사상을 규정했다... 오늘날 유대교로 알려진 종교의 뿌리는 바리새인들이다. 바리새 율법학자들의 사상과 이의 현실 적용에 대한 논의를 담은 수많은 문헌들이 아직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이며 핵심적인 것이 바로 탈무드다... 탈무드에 대한 연구는 바리새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지금의 유대교는 AD 70년 헤롯 성전이 파괴된 후 성전 제사 없이 왜곡된 율법 해석을 근거로 바리새인들에 의해 세워진  종교다. 아서 쾨슬러는 저서  <13 지파>(The Thirteenth Tribe)에서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거의 없다고 제시했다. 실제로 현재 유대인은 아슈케나지 유대인(90%)과 세파르디 유대인(10%)으로 구분된다.

유대민족의 디아스포라 이후, 특히 중세유럽에서 카톨릭 교회를 비롯한 일반 민중들에게 끊임없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으며 잦은 공개적 탈무드 소각사례들과 포그롬(유대인 박해)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반기독교적, 반사회적, 반윤리적으로 인식된 탈무드의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The Babylonian Talmud, Soncino edition).

그(Jesus the Nazarene)와 그의 제자들은 마법과 흑마술을 사용하여 유대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미혹했으며 유대민족의 종교를 전복시키려는 이방민족 열국의 사주를 받은 자였다. (Sanhedrin. 43a)
그는 기적을 행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운 마법을 사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토라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자신의 살갗을 자르는 행위를 저질렀다. (Shabbos. 104b)
그는 성적(性的)으로 문란했으며 돌로 만든 우상을 숭배했다. 그는 그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쫒겨났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Sanhedrin. 107b; Sotah. 47a)
예수는 그가 지은 죄로 인하여 지금 지옥의 똥물에서 펄펄 끓고 있다. (Gittin. 57a footnote #4)
탈무드를 거부하는 기독교도들(“minim")이나 그 외 모든 자들과 그들의 자손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Rosh Hashanah. 17a)
신약성경 (“uncanonical books")을 읽는 자들은 앞으로 올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Sanhedrin. 90a)
유대인들은 기독교도들의 책들(신약성서)을 파괴해야 한다. (Shabbath. 116a)
기독교도들의 말살은 필수적인 제물이다. (Zohar, Shemoth)
경전에 쓰여진대로 토라를 공부하는 비유대인은 죽어야 마땅하다. 모세는 이 율법을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남겼지 저들을 위해 남긴 것이 아니다. (Sanhedrin. 59a,  Exhibit 60)
오직 유대인만이 인간이다. (Baba Mezia 114b)
모든 비유대인의 아이들은 짐승이다. (Yebamoth. 98a)
고이(비유대인)가 고이나 유대인을 죽였을 때는 유죄이지만 유대인이 고이를 죽였을 때는 무죄이다. (Tosefta, Aboda Zara, VIII, 5)
우리의 종교에 대해 고이와 얘기하는 것은 모든 유대인을 죽이는 것과 다를바 없다. 만약 우리의 종교가 그들에 대해 뭘 가르치는가를 고이들이 알게되면 그들은 망설임없이 유대인을 몰살시킬 것이다. (Libbre David 37)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이 세상의 다른 민족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는 기간이다. 이 땅의 모든 민족은 하층계급으로 정복당할 것이며 우리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Zohar, Toldoth Noah 63b)
메시아가 도래하면 모든 유대인은 한명 당 2만8천명의 노예들을 갖게 될 것이다. (Simeon Haddarsen, fol. 56-D)

카발라
랍비 핑클슈타인은 바리새주의가 바벨론 유배에서 유래했다며 바벨론 유배시기를 격찬한다.

“바벨론 유수는 중요한 기간이다 … 유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자신을 발견했다. 토라를 재발견했으며 이것을 삶의 규칙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토라를 ‘재발견’했다는 것은 구약성경을 재해석하면서 전승되어 온 신비주의 카발라 사상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바벨론의 밀교는 인류 역사상 줄곧 이어져오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의 모든 우상숭배 종교의 요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숭배하던 이스라엘의 신앙에 바벨론 밀교가 합쳐지면서 마법적인 카발라가 생겨나고, 카발라에 의해서 성경을 ‘재해석, 재발견’하면서 탈무드가 발전되었을 것이다. 19세기 말경에는 유대인의 절반 가량이 카발리스트가 되었다. <세계 유대백과사전>은 카발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팔레스타인이 유대 신비주의의 탄생지이기는 하지만 카발라가 잉태된 땅은 바벨론이다. 탈무드와 카발라의 신비성은 하나에서 기원해 서로 안에서 완성되어 간다.”

유대교에게 바벨론은 탈무드와 카발라가 기원했다는 점에서 찬미의 대상이 되지만, 성경에서 바벨론은 저주와 책망의 단어로 불린다. 성경에서 바벨론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주권에 도전하며 물질주의와 불경건한 삶으로 인도하는 인간의 정치 경제 종교 구조를 대표한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모든 사람들을 미혹할 사악한 세력에 대해서 경고한다(계시록 17:5-6).

서구 오컬트 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의 신비사상 카발라는 중세 이후 유럽에서 생겨난 대부분의 비밀결사들(Templar, Rosicrucian, Freemasonry, Ordo Templi Orientis 등)과 기독교 이단종파들(Frankist, Theosophist 등)에 주된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적 세계관과 윤리체계가 유럽을 지배했던 시절 반기독교적이며 반사회적인, ‘망령된 미신’으로 간주되었던 카발라는 ‘삼라만상의 비밀’과 이의 원리를 이용한다는 흑마술에 대한 ‘학문’으로 7세기부터 13세기까지 유대교 랍비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1292년 스페인 유태인 Moses de Leon의 <Zohar>(광휘의 書)를 통해 성문화 되었다. 유대인 역사가 Max Dimont에 의하면 16세기에 이르러 후일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새 이론이 기존의 카발리즘에 추가되었는데 그는 <Jews, God, and History>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6세기에 이르러 ‘사자 아리(Ari the Lion)’로 불리운 위대한 카발라학자 이삭 루리아 (1534-1572)에 의해 카발리즘에 새로운 형이상학적 철학이 주입되었다. 루리아는 모든 물질과 관념은 ‘tzimtzum (수축)' 또는 ’정(正)‘과 ’shevirat hakeilim (파열)‘ 또는 ’반(反)‘, 그리고 ’tikkun (복구)‘ 또는 ’합(合)‘의 세 단계의 순화를 거쳐 진화한다고 역설했다.”

비밀결사단
Illumination(빛을 받음)은 중요한 카발라적 용어로 유대인들이 창시한 많은 비밀결사들의 단원들은 스스로를 Illuminati (빛을 받은자) 또는 Perfektibilisten(완벽한 인간, 神人)으로 불렀다. 1776년 유대인 카발리스트 아담 바이샤프트에 의해 창설된 일루미나티는 그 한 예가 된다. 그 교리와 이론적 당위성을 떠나 ‘인류의 해방’을 외친 Illuminism (광명주의)은 실상 사상적으로 비유대인을 끌어들여 유대인의 세를 불리는 정치적 도구인데, 이는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으로 이미 로마시대 때부터 로마정부는 유대교를 비롯한 관련 밀교들을 체제 전복적 성향의 불순한 모의로 탄압해왔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수십년 동안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를 내건 많은 비밀결사들이 태어나고 활동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들 결사의 창시자들은 당시 ‘미스터리 맨’으로 불렸던 유대인들이었거나 후일 유대인으로 판명된 인물들로 대표적인 예로 생제르맹(St. Germain), 카글리오스트로(Cagliostro), 마르틴 빠스콸레(Pasquale)와 영국의 포크(Falk) 등이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 프랑스혁명 초기의 지주 역할을 한 오를레앙공의 측근이었던 유태인 드 라클로스(Cordelos De Laclos)도 특기할만하다. 부언하면, 오컬티스트들에게 ‘일루미나티’란 용어는 ‘시온의 현자들’과 동의어이다.

프리메이슨의 사상을 체계화시킨 알버트 파이크도 그 기원을 카발라에 둔다고 기록한다.
“메이슨은 ‘빛’을 추구한다. 이 추구는 우리를 바로 카발라로 인도한다 … 모든 메이슨 조직은 그 비밀과 심볼을 카발라에서 빌렸다 … 카발라는 오컬트 과학의 핵심이다 … 카발라인들은 사탄의 진짜 이름이 야훼를 거꾸로 한 것이라고 한다. 루시퍼, 빛을 가진자! 기이하고 신비한 이름이 어둠의 영에게 주어졌다니! 루시퍼, 아침의 아들! 그가 빛을 가진 자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프리메이슨이자 뉴에이지의 모체가 되는 신지학회의 설립자인 블라바츠키도 동일하게 말한다.
“비의秘儀들로 이루어진 고대 지혜인 프리메이슨의 뿌리는 카발라다. 카발라로부터 모든 고대와 현재의 종교들이 생겨났다. 모든 프리메이슨단들은 카발라의 심벌과 비밀들을 갖고 있다. 그 카발라의 심벌과 비밀들을 통해서만 인간의 이성과 신에 대한 신앙, 힘과 자유, 과학과 신비가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카발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열쇠다. 초고대 (예를 들어 아틀란티스 시대와 같은), 즉 인류의 초기로부터 자연과 우주에 대한 근원적 진리들이 프리메이슨의 아데프트들에 의해 안전한 성소에 보관돼 있었다. 고대 비전秘傳의 신전들에서 비의秘儀들을 통해 그 진리들이 가르쳐졌다. 근대의 메이슨은 고대 오컬트 메이슨의 희미한 반영에 불과하다. 그것은 고대의 신성한 메이슨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카발라의 상징인 육각형은 프리메이슨 33계급인 크로울리에 의해서 발안되어 ‘크로울리의 육각성’이라고도 불리운다. 두개의 삼각형을 뒤집어 만든 형상의 육각성은,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보내야 하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그리고 예루살렘에 굳이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나팔절, 대속죄일, 안식일을 의미한다. ‘다윗의 별’이라고도 불리우는 육각성은 17세기 이후 전통적으로 유대인을 나타내는 기호로 정착되면서 현대 이스라엘의 국기에도 사용되고 있다.

유대인이 대망하는 메시야
16세기에 탄생한 유대교 하시디즘의 근본사상이 된 루리아적 카발라는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과 동부유럽의 코자크족의 포그롬과 같이 당시 유럽 유대인들에게 이어진 재난의 산물이었다. 1534년에 태어난 이삭 루리아 아쉬케나지는 1572년 팔레스타인 Safed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추종자들에게 ‘tikkun’(redemption, 구원, 속죄, 원상복구)이라는 틀 안에서 디아스포라로 인한 유대인의 수난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루리아는 기독교 태동 이후 지중해 연안에 성행했던 최초의 이단론인 영지학(Gnostic) 이론을 도입했다. 요지를 보면,

"神 (또는 En-Sof)은 자신의 지식을 머금은 빛을 주발에 담아두었는데 이 주발이 그 내용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열함으로써 그 안에 담겨있던 빛들이 우주에 흩어져 물질 속에 갇히게 되었다. 따라서 신의 선민인 유대인의 존재 목적은 신이 소유한 지식의 빛을 물질로부터 해방시키고 원상복구시켜 주발의 파열로 세상에 만연하게 된 죄와 악이 존재하기 이전의 상태로 우주를 복구시키는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루리아는 유대인이 이와 같은 사명을 완수했을 때 메시아가 도래하고 이와함께 병든 우주가 치유된다고 주장했다. 루리아의 교리에 의하면 ‘tikkun'의 과업은 유대인의 투쟁, 그리고 역사의 발전이란 명제와 결부되어 있는데 이러한 개념은 300년 후 헤겔의 변증법으로 포장되어  유대교 랍비의 손자 칼 맑스의 공산주의 혁명론에서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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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여지껏은 텔아비브)으로 선언하고 미국 대사관을 이전하며 축하 행사를 가졌다. 트럼프의 유대인 사위와 유대교로 개종한 딸이 행사에 참석해 기뻐하고 기독교인들이 함께 환호하는 동안 바로 곁에서는 많은 팔레스타인들이 반발하며 죽임당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AD 70년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멸망당하고 흩어졌다가 1948년 5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을 때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셨다고 기뻐했다. 과연 이것도 하나님의 역사였을까?
유대인의 편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 시대에 성경의 예언을 성취되는데 쓰임받은 고레스같은 인물이라며 많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과연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일까?
유대인들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애쓴 이유는 성전재건을 위함이었다. 그들은 통곡의 벽에서 애통하며 성전 재건을 염원해왔고 그 준비도 거의 마쳤다.  제3성전이 재건되려먼 중동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연 이것도 하나님의 뜻일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
이천년 전 예수가 오시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시야를 맞았지만 그를 인정하지 않고 죽이기까지 했다. 제사장과 랍비 등 종교적 지도자들의 위선이 폭로되고 비난받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배척당할 것과 예루살렘이 파멸될 것을 예언하셨고, 예언대로 결국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70년에 로마에 의해 함락되고 135년에 재함락되면서 결국 유대인은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지면서 빈 땅에 인근의 아랍인들이 들어왔고 근 2천년 동안 이곳은 그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1917년 예루살렘을 위임 통치하던 영국 정부는 벨푸어 선언을 발표하며 이곳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도록 허락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전쟁 자금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이차대전이 끝나면서, 그동안 치밀하게 로비활동을 벌여왔던 이스라엘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동정표를 받고 거의 2천년 만에 소생할 수 있었다.
1948년 고토에 이스라엘이 수립되고 이후 많은 유대인이 이주하면서 그곳에 정착해 있는 팔레스타인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은 제1차, 2차, 3차, 4차 중동전쟁에 이르기까지 피로 얼룩진 역사가 이어졌다. 특히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로 주장되면서 종교전쟁의 중심이 되어왔기 때문에 건국 때부터 동과 서로 나뉘어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텔아비브가 사실상 이스라엘의 수도 역할을 해오고 있었는데, 이제 이스라엘은 건국 70년을 맞으며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되었다. 기독교인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한 것이다. 트럼프는 650만명의 유대인 편에 서면서 4억의 아랍인과 아랍을 포함한 16억의 무슬림을 순식간에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트럼프의 결정에 대해 이스라엘 총리는 "평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발표했고, 이스라엘 대통령은 "아름다운 선물"이라며 환영했다. ‘예루살렘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유대교 남성들은 전통 모자 키파를 쓰고 예루살렘 거리를 행진하며 팔레스타인 상가 앞에서 “아랍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떠나라” “아랍인들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번 조치가 종교전쟁을 부추기고 팔레스타인을 끝나지 않을 전쟁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비난했고,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는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며 전쟁을 선언했다. 군중들은 ‘분노의 날’을 선포하고 레바논을 비롯한 전세계 이슬람 국가에서 대대적인 반미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위대한 귀환 행진’ 시위가 이어지던 가자지구 북부에서는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팔레스타인 시위대 42명이 숨지고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그런 중에도 ‘기독교인’ 트럼프는 “이스라엘엔 커다란 날이다. 축하한다”란 트윗을 남겼다.

세대주의
우리 부모님은 황해도가 고향인데 육이오전쟁이 나면서 집을 버려두고 남하하게 되었다. 만약 생존해 계신 엄마의 생전에 통일이 되어서 고향에 갈 수 있다면 옛집의 터를 찾아가서 되돌려 달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토지문서가 없어서도 안되겠지만 있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불과 100년도 안되는 세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나라가 바뀌었기 때문에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거의 2,000년이 지났음에도 자신이 땅의 주인이라며 팔레스타인인을 몰아내려하고 있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그곳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성경을 인용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가나안 입성 시 그곳에 살고 있는 아말렉을 다 죽이라고 하셨다. 여리고 성이 무너져 이방인들이 다 죽었듯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는 희생당하며 피흘리는 이들이 필요한데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이다."
팻 로버트슨 목사는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만 준 이 땅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완전히 몰아내고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한다. 팔레스타인과 타협하는 정치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가자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시킨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2006년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그는 "하나님의 땅을 나눈 데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라고 주장했고,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추진한 이츠하크 이스라엘 총리가 1995년 극우 청년에게 암살당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며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을 원수로 여기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시오니즘을 신봉하는 기독교 신앙을 ‘세대주의’라고 부른다. 세대주의자들은 인류 역사를 여러 세대로 구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영토를 이스라엘이 전부 회복하고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수도로서 회복될 때 마지막 시대가 완성되어 종말이 온다고 믿는다. 다니엘 9:24에 “일흔 이레”라는 구절이 있는데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이 땅에서의 교회, 또는 이스라엘의 고난과 예수님의 재림, 또는 종말과 연관지어 이해하면서 마지막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세계에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1948년 갑자기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이른바 '약속의 땅'에 모여들기 시작하자, 세대주의적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땅을 되찾아 주셨다며 열광했다. 트럼프의 자문인 존 하기 목사는 저서 <예루살렘 카운트다운>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역사적 순간에 대해 선지자는 ‘한 나라가 하루 사이에 태어날 것’(이사야 66:8-9)이라고 기술했다··· 이것은 20세기 예언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지금도 엄연히 살아 계심을 만인에게 보여 주는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후 세대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왔는데, 70년이 지나고 ‘예루살렘 선언’이 있자 마지막 시대에 관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해석하며 환호했다.

진짜 이스라엘은 누군가?
하나님이 선민의 약속을 주신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일까?
세대주의자들은 혈통적 유대인과 국가적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보지만, 개혁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선민으로 본다. 국가적 이스라엘은 성경의 구속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개혁교회의 관점이다.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구약의 이스라엘을 현대 이스라엘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성경 속의 하나님을 민족주의적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성경의 구속사적 의도를 유대 민족주의적으로 편협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인엽  박사는 기본 인권조차 유린당하는 팔레스타인 현실을 무시하는 극단적 시각의 배경은 구약에 등장하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이스라엘 왕국 수립을 인종주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선민인 유대 민족을 편애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해 원주민을 학살하시는 하나님으로 왜곡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주장한다.
“성경의 가르침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선민사상과 충돌한다. 결국 인종주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한 민족의 수호신으로 격하하는 신성모독이다. 이런 왜곡된 시각이 만연할 때, 노아의 세 아들 중에 함이 저주받은 이야기로 흑인 차별이나 노예제를 합리화하거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이용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악행들이 벌어졌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흐름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준식민지 점령 정책, 분리주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기독교 시오니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함으로 버리셨지만 아주 버리신 것이 아니므로 이방인의 수가 찬 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것이다(롬 11장).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대상은 메시아이지 세속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 건국이나 영토 확장은 마지막 때의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영한 박사도 현 이스라엘을 구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는 세대주의자들의 견해는 비성격적이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의 예루살렘은 다가오는 참 실재인 종말론적 예루살렘의 그림자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구속사의 종말론적 상징이며 새 예루살렘을 지시하는 예표로서만 우리들에게 의미를 지닌다.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의 진정한 평화란 정치적 협상에서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루실 종말론적인 평화를 예언하고 있다(계시록 21장). 종말론적 예루살렘은 유대인만의 도시가 아니라 모든 열방, 모든 민족, 특히 팔레스타인들도 함께 평화를 누리는 더불어 함께 사는 평화의 도시다.”

고레스와 벤구리온
세대주의자들은 “순간에 한 나라가 태어났다”는 예언이 1948년 이스라엘이 회복되면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지만, 개혁주의자들은 이것이 오래 전에 이미 성취된 일이라고 해석한다.
기원전 537년 마치 하루 사이에 생겨나듯 이스라엘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며 70년간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으나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대왕이 유대인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것이다.
고레스는 비록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고 순종했다.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에스라 1:2)라고 선포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인들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완전히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반면에 세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주장하는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에서는 땅을 차지하려는 시오니스트의 음모와 술수와 전쟁과 살상이 그치지 않았다. 이 일을 이끌었던 벤구리온이 작성한 선언서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대신에 “바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유대사의 위대한 순간들>은 선언서의 최종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오후 1시에 국가 평의회가 모였을 때에도 의원들은 건국 선언서의 문구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전통을 고수하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원했지만 세속주의 유대인들은 그 표현에 반대했다. 결국 절충하여 벤구리온이 ‘하나님’ 대신에 ‘바위’라는 표현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가 된 벤구리온을 비롯한 건국 공신들은 정치적 이유로 유대교로 개종한 카자르 민족의 후예들로서 아브라함의 후예인 혈통적 유대인과 구분해서 “현대 유대인”으로 불리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하나님이 “한 나라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친히 일하신 평화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오니스트 현대 유대인들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해서 전쟁의 명분을 만들고 많은 살상을 통해 이루어낸 사건이었다.

제3성전과 제 3차 대전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은 과거에 무너진 두 성전을 대신해서 제3성전을 짓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본다. 저들은 성전 재건을 위해서 통곡의 벽에서 애통하고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 왔다.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려 한 것은 결국 그곳에 성전을 다시 짓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김종철 감독이 만든 다큐 <제3성전>을 보면 그것의 준비는 거의 다 끝났다. 제3성전의 설계도,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크기와 사용하는 돌의 종류와 문양, 휘장의 색깔과 천의 종류 등이 결정되어서 이미 만들고 있다. 성전의 내부에 사용할 번제단과 황금촛대 등은 이미 다 만들어 놓았다.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4천명의 악사들이 연주할 4천개의 악기도 만드는 중이고, 제사장 후보생들도 교육 중이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성전을 짓고자 하는 장소가 동 예루살렘에 위치한 모리아 산이고 그곳에 이슬람의 황금사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제3성전을 짓기 위해서 황금사원을 무너뜨릴 경우 세계 16억 무슬림이 반발하며 이슬람과 이스라엘의 전면 전쟁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왜 성전재건에 모든 것을 다 바치려는 것일까? 예수가 오시고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으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찢겼다. 이후로 예수 자신이 성전이 되셨으므로 건물로서의 성전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비록 원수에 의해 무너진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런데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에 의하면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고 “지옥에 있는 자”다. 그래서 다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재건이 필요한 것이다. 유대인은 앞으로 진짜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들이 기다리는 ‘그’는 성경이 예언한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아닐까?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성전을 지으려 하면서 벌어질 엄청난 전쟁은 성경이 예언한 아마겟돈 전쟁이 아닐까?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야’
세계비밀 엘리트 세력은 세계정부를 세우려는 오랜 목표를 따라서 움직여왔다. 이것은 흔히 ‘음모론’으로 불리우며 배척당하기도 하는데 게리 알렌은 “오직 연구해본 자들만이  음모를 알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직접 연구해보지 않는다면 이것은 황당한 소문에 지나지 않게 되겠지만, 저들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 부정할 수 없을 많은 구체적 자료들을 보게 되면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저들은 흔히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로 대변되는 집단인데, 저들에 관한 증언을 들어보면 그 중심에 유대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제3성전을 지으며 기다리는 ‘메시야’는 비밀 엘리트 세력이 추대할 세계정부의 대통령이자 성경이 예언한 적그리스도라고 추측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 문명국가들을 붕괴시키고 장막 뒤에서 일반 혁명을 증식시켜 이스라엘의 지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적으로 프리메이슨 조직을 만들었다. 프리메이슨 조직은 단지 유대인 수중에 들어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 구즈노 데 무쏘, 코뺑 알방셀리
“프리메이슨 조직은 유대인의 제도다. 그것의 역사, 계급, 문장, 암호, 의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의 것이다.” - 아이작 와이즈
“프리메이슨리는 유대교에 기반을 둔다. 메이슨의 의식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 잡지 「쥬이시 트리뷴」
“시오니스트 세계의 리더들, 도처의 프리메이슨 조직에서 영향력있는 사람들은 세계 단일종교와 세계단일정부를 가져올 세계혁명을 위해 결탁하여 노력해 왔다. 많은 메이스닉 랏지들은 유대인들로만 구성된다. 반인종주의연맹을 탄생시킨 브나이 브리스 랏지가 그 한 예가 된다”. - 레이 노보셀
“프리메이슨이라는 엄청난 조직의 진짜 우두머리는 유대주의의 강경 멤버와 고위 카발들과 엄격하고 복잡하게 연합되어 있다. 조직의 엘리트는 이스라엘 카발리스트의 비밀부서에 고용되어 있다.” - 구즈낫 데 모소
“랍비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은 우리 온 역사를 통해 미국의 프리메이슨 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다… 프리메이슨과 유대교의 의식과 상징 그리고 용어에는 많은 공통적 주제와 이상이 발견된다.” – 블로그 <유대교와 프리메이슨리>
“프리메이슨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유대인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변함없이 신성한 지혜의 기준을 간직하고 있다.” - 잡지 <르 심볼리즘>
“프리메이슨리의 상징들과 의식들은 모두 유대 카발라의 오컬트 철학에 기초한다. 프리메이슨의 모든 비밀은 유대 카발라의 덕택이다.” - 앨버트 파이크
“프리메이슨리는 온 세계에 퍼진 비밀 단체들이 겹쳐져 이루어진 몸이다. 이것의 목적은 기독교 원리에 입각한 현재의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며 그 자리에 무신론적 이성주의 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겉모습은 종종 바뀌었지만 이 목적은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이 몸부림의 본질은 영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성주의와 기독교 사상과의 충돌이며, 신인(神人)이 될 인간의 권리와 하나님의 권리와의 충돌이다.” - 비콤테 폰신
반기독교적 세계정부의 지도자인 인간 ‘메시야’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기독교인의 목숨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당하게 혼합되어야 한다. ‘오직 예수’만을 외치는 참 기독교인은 반정부주의자가 되어서 제거되고 순교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가는 길은 좁은 길, 좁은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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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In reply to this post by choin

다음을 참조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Kt465gCxpcQ

(Vatican Secret Societies and the New World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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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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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새 바쁜 일이 많아서, 천천히 읽어보고 제 생각을 올리겠습니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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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최광민 박사님,

제가 쓴 글을 이메일로 보내드릴께요.
너무 길어서 이곳에 올릴 수는 없겠습니다.
앞의 글들에 대해서는 답변하실 필요가 없겠습니다.
이것들을 다 포함해서 처음부터 전개해 나갔습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지난번에 그러셨던 것처럼 모호하거나 추가할 필요가 있거나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해주세요.
항상 도움을 받으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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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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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님,

보내주신 문서에 코멘트 달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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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주옥
코멘트 다시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하나씩 답변하기로 하고, 먼저 '유대인의 세계지배 계획과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최박사의 반박에 대해 답변합니다. 우선 다음의 글을 읽어보세요. 제 글과 같은 방향입니다.




From: choin [via FORUM SCIENTIARUM] <ml+[hidden email]>
Sent: Wednesday, June 27, 2018 02:50 PM
To: 김주옥
Subject: 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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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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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회 음모(론) 관련 토론

choin
Administrator
옙, 읽어보고 의견드리겠습니다.

최광민